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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Jun 22. 2024

낯설고도 익숙한 돌부리의 정체

* 이 글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Teasdale, John D., and Michael Chaskalson. “How Does Mindfulness Transform Suffering? I: The Nature and Origins of Dukkha.” Contemporary Buddhism 12.1 (2011): 89–102. Web.








먼저 소개하자면, 이 논문의 저자 John D. Teasdale은 20년 이상 우울증의 인지모델과 치료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Zindel V. Segal, J Mark G. Williams 등과 함께 1990년대 MBCT프로그램을 개발했다.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의 아우 프로그램으로, 우울증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고안되었으며 심리치료의 한 방법인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울증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부처의 네 가지 진리 (The Four Noble Truths)에서 우울의 작동방식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은 2009년 12월 Spirit Rock 명상센터에서 MBSR/MBCT 교육자를 위한 Teasdale의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Teasdale은 먼저 두카(dukkha, 고통)의 존재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부처는 두카를 신체적/감정적 고통, 고뇌, 삶의 피로감, 존재론적 불안감 등 다양한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때문에 완전한 평화나 만족, 안락함, 완전함에 대한 느낌이 없는 한 두카가 존재한다고 했다. 곧 모든 인간이 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의식과 마음에 구조화된 방식으로 내장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카라고 하는, 돌부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부처는 크게 세 가지로 두카를 구분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의 평범하고도 명백한 '고통', 두 번째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진실 그 자체로서의 '고통', 세 번째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으로부터 발생하는 불만족이라는 '고통'이 그것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겪었던 무수한 고통들이 떠오를 것이다.


첫 번째 평범하고도 명확한 고통은 이해하기 쉽다. 신체적/감정적인 고통, 불쾌한 상황을 견뎌야만 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 사랑하는 존재와 분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상황들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몸이/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발생한 외부의 상황은 우리가 원하는 상황과의 괴리를 만들어내며 결과적으로 '불만족'과 '불쾌감'을 안겨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 자체가 아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 사건은 그저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고통'을 만들어내고, 이를 '두 번째 화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쨌든 첫 번째 고통은 외부적인 상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다음으로, 두 번째 고통은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변화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 '변화를 원하지 않을 때' 고통이 발생한다. 아주 순간적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새 옷, 새 차, 새 집, 또 새로운 경험 등을 통해 찰나의 '완전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감정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겠으나, 명확한 사실은 그 모든 '완전한 행복감'이라는 것은 곧 흐려지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완벽한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두카, 즉 고통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정의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정의의 콜라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 외부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경험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논문에서는 '명상자의 경험'을 예로 드는데, 오랜 경험이 있는 명상가가 명상센터에서 며칠간 반복되는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흔히 겪는 상황을 언급한다. 하루는 명상이 매우 잘 되었으나, 그다음 날에 명상이 엉망이었다고 느낀다면 그 명상자는 스스로를 '좋은 명상자 vs 나쁜 명상자'프레임으로 보기 쉽다. 사실은 변화하는 외부의 상황에 따라 경험 자체도 변화할 수 있는데, '통제'와 '예측'을 원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 상태를 투박하고도 단순하게 '좋은 명상자 vs 나쁜 명상자' 프레임으로 뭉뚱그리고, 이게 우리를 감싸고 있는 복잡한 삶과 경험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거다. 명상이 잘 되었던 날의 경험도, 명상이 안 되었던 날의 경험도 모두 지나가는 경험에 불과한데 그것을 '나의 일부'로 정의해 버리는 순간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고통에 대한 세 가지 정의는 모두 이를 '외부의 사건'이나 '어떤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쯤에서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왜 모두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에 대한 답으로 두 번째 진리, '탄하(tanha,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탄하를 '완전히 만족될 수 없는 갈증'으로 표현한다. '완전히 만족될 수 없는 갈증'을 '만족시키려는 집착'이 고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를 풀어 설명하자면 '두카'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서 '탄하'가 발생하기에 이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어서 탄하도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첫 번째로 감각쾌락에 대한 욕망, 두 번째로 존재에 대한 욕망, 세 번째로 존재하지 않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가 '탄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먼저, 감각 쾌락에 대한 욕망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좋아하는 쾌락, 즉 좋은 맛, 냄새, 감각, 시야, 소리, 생각과 감정을 원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고 싶어 한다. 이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욕망으로 설명하고 있고,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신경계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초콜릿을 먹으면 단맛을 느끼고, 소량의 카페인이 신경계를 깨우는 쾌락을 선물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이 감각적 쾌락이 즉각적인 만큼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철학적인 욕망인데, 무엇인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자아실현의 욕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듯한데... 좀 더 쉬운 표현으로는 성취나 야망에 대한 욕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음 깊이 내재할 수밖에 없고, 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자 '존재의 의미'를 갈망한다고 설명한다. 이 욕망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을 강하게 원하고 그것은 사랑받는 것,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 일이나 공부를 잘하는 것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이와 반대로, 무엇인가가 되지 않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앞서 두 번째 욕망이 끌어당기고 원하는 것이라면, 마지막 욕망은 밀어내고 거부하는 욕망이다. 쉽게 말하면, 몸과 마음의 고통을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 무엇인가를 잘 못하거나 실패한 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포함하여 우리가 생각하기에 '피하고 싶은 모든 것'을 거부하는 상태이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무엇인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욕망이 위험한 것은, 현재의 욕망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지금 무엇인가에 실패했다면, 잘 못했다면, 아프다면 미래에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Teasedale은 왜 이렇게 길게 두카와 탄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것일까? 이에 대해 논문의 말미에서 이 의미를 설명한다. MBSR이나 MBCT는 유니버설 한 명상 프로그램으로 고안되었고, 때문에 인종, 연령, 몸과 마음의 상태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되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자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고통과 욕망'을 이해해야 다양한 원인으로부터 발생하는 우울과 불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고통과 욕망의 보편성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고, 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의 개인화'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내용을 접한 이후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따라가며 분류표에 넣어 보았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놀랍게도 이 분류표를 벗어나는 고통이나 욕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커리어나 난임이라는 돌부리는 '되고 싶은 욕망'과 ‘되고 싶지 않은 욕망’이 동시에 충돌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이 즈음, 동일한 문제를 맞닥뜨린 제삼자가 있다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했을 거라는 생각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빅터프랭클의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 빅터 프랭클 (Victor E.Frankl)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떨어진 돌부리가 두카(Dukkha, 고통), 즉 자극이라면 그것에 대한 반응이 탄하(Tanha,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외부의 자극에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었다면 마음챙김 연습은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힘'을 길러가기 위한 연습이 될 수 있다.


내 앞에 돌부리가 떨어졌을 때, ‘대체 왜 내 앞에 이런 게 떨어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돌부리는 그저 거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이 여정은, 내가 돌부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를 딛고 일어서 다시 걸어나가는 방법을 배울수 있도록 하는 성장의 과정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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