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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May 20. 2024

프롤로그.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몇 년 전, 남편의 권유로 처음 명상 수업에 참여했다. 이전에도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때때로 명상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명상을 하긴 했지만, 명상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하는 가이드 음성을 따를 뿐이었다. 남편은 이미 전통적인 불교 명상의 한 갈래인 위빠사나 명상을 꽤 오래 해왔고, 10일간의 묵언명상 수련까지 참여했던 나름 경력자였다. 단회성 명상보다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접해보기를 권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위빠사나 명상을 찾아보았다. 전 세계 많은 장소에서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최소 1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직장인이었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만들 수 없어 다른 명상프로그램들을 찾아보았다. 해외에서는 명상이 꽤나 알려져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든 상태였지만, 아직 국내에서 초심자가 쉽게 참여할만한 명상프로그램을 찾기는 어려웠다. 명상이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종교적 환경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었기에 꺼려졌다. 



  그러다 만난 게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이었다. 원래 다니던 요가원에서 연에 1-2회 정도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마침 새 프로그램 오픈 공지를 본 것이다. 197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병원에서 존카밧진 박사가 개발해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병원, 대학교, 기업에서 교육되고 있으며, 당시까지 2천여 편에 가까운 연구논문까지 발표되었다 하니 왠지 마음의 벽도 허물어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존 카밧진 박사의 MBSR 프로그램은 1974년 한국의 숭산스님과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참선을 접하고 가능성을 본 존 카밧진 박사는, 종교와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 유니버설 한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고, 그 결과물이 MBSR 프로그램이다. 



  당시 내가 참여했던 MBSR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오전 4시간씩, 약 8주간 진행됐다. 중간에 1회 6시간의 종일명상이 포함되어 있어 총 9회 차의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MBSR 프로그램은 단순히 명상을 수련하는 것을 넘어서, 삶에 있어서 고통이라는 것의 의미, 우리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보편성, 그리고 우리가 고통에 반응하는 잘못된 방법들과 그것을 바로잡는 방법을 함께 알려주었다. 그 8주간의 교육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낯선 본인의 마음에 당황했고, 눈물지었고, 종국에는 화해하고 끌어안았다. 



  그 가운데 나도 있었다. 나는 내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명상을 통해 만난 나는 수도 없이 넘어지며 온갖 군데에 상처가 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르팍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고, 팔이나 다리에는 긁히고 파인 상처가, 어떤 것은 흉터가 되어 있었고 어떤 것은 곪아 있기도 했다.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8주간의 MBSR 프로그램을 마쳤을 때는, 그래서 당혹스러웠다. 살면서 처음으로 외면하고 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그게 엉망이라는 것을 아주 약간은 알아차렸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좀 더 명상을 해보는 방법뿐이었다. 일단은 명상을 하면 그 혼란스러움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또 명상을 하다 보면 한 꺼풀씩 벗겨지듯 그 이야기들이 풀려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MBSR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진해서 몇 번이나 종일명상에 참여했고, 자애명상과 같은 다른 명상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명상과 관련된 책을 읽었고,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자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과정에서도 나는 여러 번 넘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이 있어 조금씩 건강해지는 중이다. 살면서 ‘이게 정말 좋아서,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명상을 만나고 그런 게 생겼다. 그래서 조금 더 진지하게 MBSR 지도자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께서는 명상은 50년을 해도 ‘이제 좀 알려나’ 싶은 거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야 4-5년 차, 매우 성실히도 아닌 뜨문뜨문 명상을 하는 초심자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참 투박하고 뭉툭했던, 나를 돌볼 줄 몰랐던, 그래서 명상을 참 못했던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해 준 명상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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