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Teasdale, J. D., & Chaskalson (Kulananda), M. (2011). How does mindfulness transform suffering? II: the transformation of dukkha. Contemporary Buddhism, 12(1), 103–124.
마음챙김 명상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대체 명상이 어떻게 내 앞에 놓인 돌부리를 걷어찰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였다. Teasdale의 두 번째 논문에서 그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는 앞서 설명했던 욕망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고통, 그 반복적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하는 마음챙김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앞선 논문에서 설명한 세 가지 욕망을 가지지 않았던 적이 한순간이라도 있었는가? 감각적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망, 무엇인가가 되기를 바라는 욕망, 무엇인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
솔직히 나는 세 가지 욕망 중 최소한 한 가지의 욕망도 가지지 않은 순간을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오히려 한 가지 욕망만 있었다면 다행이겠지만, 거의 매 순간 세 가지 욕망이 뒤엉켜 있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욕망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끊임없이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다 돌부리의 습격을 받고 나서야 명상과 상담을 통해 그 욕망과 고통들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했다. 심리치료 측면에서는 1970년대 이후 인지와 사고과정에 집중하는 인지행동치료가 활발해졌고, 2000년대 이후 3세대 행동치료로써 마음챙김명상, ACT수용전념치료, DBT변증법적 행동치료 등이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3세대 행동치료는 인지와 사고과정을 넘어서 그것을 다루는 방법과 태도에 조금 더 집중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음챙김 명상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먼저, 명상은 '마음이 처리하는 내용(Content)을 변경'한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습관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어릴 때는 약하다가, 다양한 경험을 거듭하며 강화된다. 논문에서는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부딪힌 사람에 대한 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생각 없고 무례하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릴 수도, 누군가는 '무엇인가 바쁜 일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지적 패턴은 과거의 경험이나 성격, 감정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이를 명제적(Propositional) 의미와 함축적(Implicational) 의미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명제적 의미로만 보자면 '길을 가다 어떤 사람과 부딪혔다'는 사건이 되지만, 함축적 의미로 본다면 '길을 가는데 (모종의 이유로) 누군가 나를 치고 지나간 불쾌한 사건'이 된다. 이렇게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인지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이로 인한 생각과 감정이 달라진다. 명상은 우리 안에 고착화된 함축적 의미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패턴으로 정보를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패턴'에서 '그저 그대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패턴'으로 서서히 변화해 갈 수 있다.
다음으로, 명상은 '처리 방식(Processes, or shape of the mind)을 변경' 한다. 위의 예시에서와 같이 고통이 찾아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고통에 주의를 기울인다. 신체적 고통이든 육체적 고통이든, 고통은 그만으로 남아있지 않으며 또 다른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가장 선행되어야 할 행동은 '고통'에 기울어진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고, 명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호흡'으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주의를 옮긴 이후 발생한 사건과 고통에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나리오는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러자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비판부터, '앞으로 모든 게 엉망이 될 거야'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사고의 방식이지만, 명상은 '지금 이 순간의 경험으로서의 고통'을 인식하고 바라보기를 권한다. 이 과정에서 명상은 발생한 사건에 대한 '판단'을 멈추도록 하고, 호기심 어리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준다.
이것을 흔히 'Doing mode'에서 'Being mode'로 변화해 나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Doing mode'란 말 그대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행동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생성되고 순환하는 상태 말이다. 반면에 'Being mode'는 그저 그 순간에 존재하는 상태, 그저 관조하고 바라보는 상태, 멈추어 관찰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의 경우 명상 초기에는 'Being mode'라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었고, 한참 명상을 지속한 후에야 '그때의 나는 명상을 하는 중에도 생각과 감정의 빠른 유속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많은 경우, 명상을 꽤 오래 지속한 후에야 진정한 'Being mode'를 경험한다. 그전에는 그저 명상을 '흉내 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척 앉아있을 뿐일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명상을 해도 효과가 없다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자.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더 좋은 처리 방식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명상은 '처리되는 자료에 대한 관점(View)을 변경'한다. 우리의 관점은, 경험과 이에 형태를 지정하는 정신모델을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지속해 왔기에 많은 경우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나'와 동일시한다. 때문에 무엇인가 고통이 찾아오면 그 자체를 '나'와 동일시하고, '나는 멍청이야, 엉망진창이야. 실패자야...'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끌고 오고 고통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 낸다. 이때, 고통의 경험과 생각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습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며 생각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바라보면 곧 그것들이 옅어지고 흐려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발생한 사건, 즉 고통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바라보지 못하면 또 다른 생각이나 감정들을 만들어낸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의 예로 생각해 보자면, 길을 가다 누군가 부딪혔을 때 즉각적이고도 자동적으로 '불쾌감'이 내 마음에 떠오를 수 있다. 이 감정은 나도 모른 사이 '나쁜 사람'이라는 판단을 만들어내고 생각과 감정은 꼬리를 물게 된다. 이때 내 마음에 떠오른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 감정으로 주의를 돌려 '이 감정이 무엇일까?' 하는 성찰을 시작한다면 나의 자동적 사고까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혼란을 방지하고자 설명하자면,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인 '고통이 발생하면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부딪힌 사람에 대해 '뭐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하고 그 상황에 집중하며 주관적이고도 불필요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와 달리 '불쾌감'이라는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펴보는 것은 내 마음에 떠오른 감정을 알아차리고 호기심 어린 태도로 관찰하며 이 감정의 성질과 작동방식을 파악해 나가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명상을 통해 우리는 고통으로 유발된 생각과 감정을 '나'와 분리하고, 내 안에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림으로써 다른 관점에서, 더 넓은 방향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마음 챙김 명상은 세 가지 메커니즘을 통해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요약하자면, 먼저 발생한 사건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좀 더 사실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을 교정해 주고, 그 사건을 사고/정서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변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응에 앞서 사건과 상황, 나의 상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주어 이전의 습관적 반응과 다른 반응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기본적으로 탑재한 작동방식 - 고통이 발생하면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고, 고통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생각에 빠지거나 휩쓸리고, 그것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의 삶보다 오래전부터, 인류가 수만 년간 진화를 거듭하며 쌓아온 생존방식이기에 한 순간에 바꾸기 어렵다. 몇 만 년의 시간에 비해 우리의 삶은 찰나이므로, 명상을 오래 해야 연습이 되고 또 하지 않으면 까맣게 잊어버린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인정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사용하던 고통에 대한 대응방식을 버리고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되기 위해 꾸준히 명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