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을 때

D+384

by 라피


나이가 들면 다 익숙하고, 잘하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더 어려워지고, 더 무거워지고, 더 낯설어지는 일이 많다. 육아를 하면서도 자주 느끼게 되지만, 개인으로서의 나로서도 그렇게 느낀다.


아주 대단할 건 없지만 꽤 열심히 준비했고, 그래서 잘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엉망이 되었고,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책이 뒤를 이었다. 여러 핑곗거리를 찾자면 찾을 수 있겠지만, 결국엔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 숨고 싶고, 쓸쓸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애써 '사실은 대충 한 거였어'라고 스스로 속이고 외면하고 싶은 느낌도 들고. 집에 오는 내내 두 번째 화살을 쏘아대려는 나를 알아차리고, 그럴 필요 없다 되새겼다. 그렇게 초라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남편과 아기를 만났다. 아기를 꼭 안고 위로받았고,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이런 기분을 풀어버렸다.


예전의 나는 이런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짜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와, 그래서 숨고 싶은 마음에 혼자 집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넷플릭스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다 명상을 접했고, 뜨문뜨문 이어져 오는 순간들마다 내 마음에 떠다니던 여러 가지 감정과 기분, 생각들을 살펴보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말 짧은 나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애써준 남편 덕에 이야기하는 연습도 했다. 그 덕분이구나, 싶었다.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이제 이런 마음을 오래 붙잡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은 되었구나.


평소와 같이 집안일을 하고 아기를 재우는데, 잠든 아기의 얼굴이 평온하고 다정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한없이 작아진 내가 되어 아이까지 작게 만들지 않을 수 있어서.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툭툭 털고, 다음에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










두 번째 화살


‘두 번째 화살(Second Arrow)’은 불교 경전에서 유래한 비유로,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는 외부적 고통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병이 들거나, 실패를 겪는 일처럼 삶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고통이다.


두 번째 화살은 그 고통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쏘는 심리적 반응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항상 이래” 같은 자책, 분노,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과 생각이 바로 두 번째 화살입니다.


명상에서는 이 두 번째 화살을 인식하고 멈추는 훈련을 한다. 즉,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쏘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고통에 반응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감성이 사라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