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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둘 키워본 지인이 작은 CD플레이어 겸 라디오를 선물해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계속 아기 노래나 동화만 들려주기보다는 여러 채널을 들려주는 것도 언어발달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는 이유였다. 11개월 무렵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로, 이제는 라디오를 자유자재로 켜 채널도 바꾼다. 아직 소리는 키울 줄만 알고 줄일 줄은 모른다.
라디오는 아주 어릴 적, 좋아했던 가수가 나오던 프로그램을 들었던 것 이후로는 수십 년간 버스나 작은 가게에서 간접적으로 들었던 게 다였다. 그러다 아이 덕에 매일같이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어느 날은 영어공부 하라는 듯 영어방송을 틀어두고, 어느 날엔 클래식을 틀어두고, 그러다 오늘은 '작은 서점'이라는 방송을 틀어두었다.
장류진, 장강명이라는 요즘 핫한 젊은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을 들려주고, 어울리는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라디오를 틀고는 또 장난감이며 책을 꺼내 장난을 치러 간 아기를 두고 잠시 누워 들었다. 한강의 소설의 내용도 무겁고 의미가 있다. 이를 해석하는 작가들의 언어도 고급스럽다. 선곡한 음악도 분위기 있다. 그러던 사이...
'딴따라라란, 내일 또 만나' 아기 사운드 벽보에서 동물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감성은 아기가 태어나고부터 전생의 일처럼 멀어지고 말았지. 잔잔하게 깔리는 깊이 있고 분위기 있는 라디오 소리와 함께, 각종 사운드북과 장난감의 노래들이 어우러지고, 그 사이 이 짧은 글을 쓰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결국 아기가 찾아와 키보드를 드럼처럼 두드리고 있다. 그러다 세워둔 청소기들을 쓰러뜨리고, 책상 위의 각종 소품들을 가지고 놀기를 희망하며 생떼를 부린다.
그래, 이게 오늘의 하루하루지. 아기와 함께 감성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삶과 현실이 남았다. 잔잔한 분위기, 인스타 감성샷은 없지만 매일 날것 그대로의 지금이 있다. 여기저기 집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며 해맑게 웃는 아기, 생떼를 부리며 드러눕는 못난 표정, 치우고 돌아서면 난장판이 되는 방이며 거실 바닥까지....
한껏 난장을 부리고는 기저귀로 빵빵한 엉덩이를 실룩이며 또 어딘가를 향해 기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풋 웃음이 터졌다. 아기에게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서는 또 어느 순간 이 소중한 현실을 깨닫게 만드는 힘이 있나 보다.
감성이 사라진 자리를, 곧 그리워질 소중한 순간들이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