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인생질문, '진심은 왜 안통할까?'
"I'm also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a boy, asking him to love her."
"난 그저 한 남자 앞에서 사랑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에요."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수업 준비를 위해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최신 유행어까지 나름 공부해서 야심 차게 강단에 섰는데, 돌아오는 건 책상에 엎드린 정수리들과 멍한 눈빛들뿐일 때. 내 딴에는 아이들을 사랑해서,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쏟아낸 열정이 허공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모든 수업이 다 그런건 아니다. 얘들아, 내 수업은 재미있잖아?! 그지?!)
설교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한 설교를 전하는데, 누군가는 시계를 보고 누군가는 노트에 낙서를 한다. 모든 설교자들이 그러하듯 후회하고 자책한다. "내 진심이 왜 이렇게 안 전달될까?" 그러다 이런 생각이 뒷통수를 때린다.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았나? 뭐가 잘못된거지?"
우리는 흔히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내가 이만큼 마음을 줬으니, 상대방도 그만큼의 마음을 열어줘야 한다는 일종의 '감정 거래'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하다. 짝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기도 하고, 부모님께 드린 진심 어린 조언이 잔소리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내 진심은 왜 상대방의 마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전박대당하는 걸까? 내 진심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너무 야박해서일까?
영화 『노팅 힐』은 세계적인 톱스타 안나 스콧과 런던 노팅힐의 초라한 여행 서점 주인 윌리엄 태커의 로맨스를 다룬다. 누가 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조합이다. 안나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레드카펫을 밟는 '제품'으로서의 삶을 살고, 윌리엄은 하루 종일 손님 하나 안 오는 서점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산다.
우연히 서점에 들른 안나와 윌리엄은 오렌지 주스를 뒤집어쓴 해프닝으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윌리엄의 평범한 세계는 안나라는 거대한 별과 만나 순간적으로 빛난다. 하지만 빛은 곧 꺼진다. 파파라치의 추격,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 그리고 무엇보다 윌리엄 자신의 두려움이 그들을 갈라놓는다.
영화 후반부, 오해와 갈등 끝에 안나는 윌리엄의 서점을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 스타라는 타이틀을 다 내려놓고 말한다.
"Don't forget. I'm also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a boy, asking him to love her." (잊지 말아요. 난 그저 한 남자 앞에서 사랑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라는 걸.)
이 장면이 명장면인 이유는 안나가 '할리우드 스타'로서 윌리엄을 찍어 누르거나 유혹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장 초라하고 벌거벗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진심을 내보였다. 온 세계가 알아주는 미모와 부와 명성을 다 벗어던지고, 그저 "사랑해 줄래요?"라고 묻는 한 여자로 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은 그 진심을 거절한다. "당신은 영화배우고 나는 서점 주인이야. 우리는 너무 다른 세상에 살아."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가 너무 다르다는 현실적 공포, 또다시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방어기제가 안나의 진심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안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서점을 나선다. 그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거절당한 한 사람의 쓸쓸함 그 자체였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진심이 안 통하는 이유는 내 진심의 순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상대방이 그 진심을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이 없거나, 두려움이라는 벽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풀어 말하면, 진심의 전달은 '발신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신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될 때가 많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호세아의 이야기를 보자.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기막힌 명령을 내리신다. "가서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라."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도망친다. 아이를 낳고도 또 도망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가서 그 여자를 다시 돈 주고 사와서 사랑해라"고 하신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퍼포먼스'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온 우주를 다해 진심을 쏟아부었지만, 백성들은 고멜처럼 끊임없이 우상을 찾아 도망쳤다. 하나님의 진심이 부족해서 이스라엘이 타락했을까? 전능자의 사랑이 모자라서 그들이 배신했을까?
아니다. 하나님은 짝사랑의 고수시다. 수천 년 동안 거절당하면서도,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면서까지 그 진심을 멈추지 않으셨다.
우리가 진심을 전하다 좌절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완벽한 사랑이신 하나님의 진심도 인간에게 밥 먹듯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기적과 사랑은 '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진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다.
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 즉 로마를 뒤집어엎을 정치적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진심'을 원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제품'을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심을 '총알'처럼 생각한다. 내가 쏘면 상대방 심장에 팍! 하고 박혀서 즉각적인 반응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반응이 없으면 "내가 헛짓거리했나?", "내 진심이 가치가 없나?" 하며 실망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제품의 논리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나와야 한다는 효율성의 논리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 진심은 총알이 아니라 '씨앗'이다. 씨앗은 심자마자 싹이 트지 않는다. 흙속에 묻혀서 어둡고 차가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물이 필요하고, 햇볕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노팅 힐』의 윌리엄도 안나의 고백을 거절했지만, 그 진심의 씨앗은 그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샤갈의 그림 속 "Happiness is not about being immortal... It's about being with people you love."라는 문구를 보며, 그 씨앗은 천천히 발아했다.
그리고 결국 그를 안나의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윌리엄은 기자들 틈을 헤치고 들어가 말한다. "저기요, 제가 생각을 바꿨어요. I'm just a silly man..." 안나의 진심은 거절당한 그 순간에도 이미 윌리엄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풀어 말하면, 내가 오늘 던진 진심이 당장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 같아도 실망할 필요 없다. 그것은 상대방의 무의식 어딘가에, 혹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심겨서 언젠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자는 아이들을 깨우며 건넨 한마디, 교회에서 상처받은 이에게 건넨 투박한 위로, 아내에게 건넨 쑥스러운 고백. 당장은 튕겨져 나오는 것 같아도,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진심을 전한다는 건, 단순히 내 감정을 쏟아내는 배설이 아니다.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셨다. 우리가 고멜처럼 도망칠 때도, 윌리엄처럼 두려워서 숨을 때도, 탕자처럼 제 멋대로 살 때도. 그분의 진심은 '강요'가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안나는 윌리엄에게 거절당한 후에도 런던을 떠나지 않고 영화 촬영을 계속했다. 그녀는 기다렸다. 윌리엄이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윌리엄은 결국 기자회견장으로 달려왔다.
진심이 왜 안 통할까 고민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진심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진심은 거래가 아니다. 내가 주었으니 너도 내놓으라는 청구서가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마음에 심어두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다.
당장의 반응이 없다고 슬퍼말라.
하나님도 당신의 마음이 열리기까지 참 오래 기다리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