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광야를 함께 걷는 부모 - 기질과 발달로 이해하는 기독교 교육
1.
"엄마, 나는 왜 친구가 없어?" 아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부모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 아이를 따돌리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 건 아닐까?'
2.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 오래 아이들을 지켜보면, 친구가 없는 아이의 문제가 반드시 주변 아이들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아이 자신의 소극적인 사회성에서 출발합니다.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거절이 두려워 시도하지 않고, 자기 안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3.
부모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직면하는 것이 아이를 돕는 첫걸음입니다.
4.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현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나에게 먼저 친절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관계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냉정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를 수동적인 기다림에서 꺼내 능동적인 관계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진실입니다.
5.
그렇다고 "그러니까 네가 먼저 가서 말 걸어"라고 다그치는 것은 해답이 아닙니다. 여기서 아이의 기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6.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Jerome Kagan)은 오랜 종단 연구를 통해 아이들의 기질적 반응성이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새로운 자극에 높은 반응성을 보이는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쉽게 위축되고, 낮은 반응성을 보이는 아이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편안하게 탐색합니다. 케이건은 이것이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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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떤 아이가 새로운 관계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은 게으르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 아이의 뇌가 '조심하라'는 신호를 더 강하게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아이에게 다르게 주신 설계입니다.
8.
그러나 기질을 이해한다는 것이 거기서 멈추라는 뜻은 아닙니다. 교육학자 비고츠키는 아이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적절한 도움이 있으면 해낼 수 있는 영역을 '근접 발달 영역(ZPD)'이라고 불렀습니다. 친구 사귀기가 바로 그 영역에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왜 못하니"라는 다그침이 아니라,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발판입니다.
9.
기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이의 출발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고, 교육한다는 것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껍질을 깨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10.
첫째, 관계의 기술을 가정에서 먼저 훈련해 주십시오.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사회적 능력의 핵심이 '감정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의 표정을 읽는 것, 자기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 거절을 감당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오늘 친구가 이런 표정을 지었는데, 어떤 기분이었을까?"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사회적 감수성은 자라납니다.
11.
아이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구를 저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다양한 이야기, 감정과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드라마, 영화를 보고 그와 관련된 주제로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 입니다. '그 사람은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그때 너라면 뭐라고 얘기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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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작은 성공 경험을 설계해 주십시오. 위축된 아이에게 "가서 친구 사귀어"라고 말하는 것은 수영을 못하는 아이를 깊은 물에 밀어 넣는 것과 같습니다. 한 명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여 아이에게 '나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됩니다.
13.
셋째, 관계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돌려주십시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학령기 아이들의 핵심 발달 과제가 '근면성 대 열등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경험을 통해 자기 효능감을 키워갑니다. 부모가 대신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다가가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전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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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성경이 가르치는 관계의 원리를 심어 주십시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먼저 친절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선한 태도로 다가가는 것.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관계의 방향입니다. 아이에게 이 원리를 가르칠 때 "그래야 친구가 생긴다"는 조건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기 때문에 우리도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는 복음의 논리로 가르쳐야 합니다.
15.
기독교 교육학자 파커 파머(Parker Palmer)는 교육의 본질이 '환대(hospitality)'라고 말했습니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맞이하는 것. 이것은 성품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그리고 이 훈련의 첫 번째 교실은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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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모님, 아이의 소극적인 사회성은 결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게 두는 것도 교육이 아닙니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되 그 기질의 한계 안에 가두지 마십시오. 껍질을 깨는 것은 아프지만, 그 아픔을 통해 아이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17.
부모가 할 일은 껍질을 대신 깨 주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나올 용기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 용기의 뿌리는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다는 복음, 그 사랑이 아이의 닫힌 마음을 여는 힘이 됩니다.
18.
한 줄 기도, "하나님, 두려움 너머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우리 아이에게 허락하소서.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아이가 되게 하소서."
유찬호 목사 | 등대교육공동체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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