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친구가 나랑 안 논대요

아이의 광야를 함께 걷는 부모 - 기질과 발달로 이해하는 기독교 교육

by 인생질문

세 번째, 좋아하는 친구가 나랑 안 논대요


1.

"엄마, 00이가 나랑 안 논대. 나 이제 학교 안 갈래."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온 아이가 툭 내뱉는 말에 부모의 마음은 철렁합니다. 친구에게 다가가 "같이 놀자"라고 용기 내어 말했는데, "싫어"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아이가 느끼는 수치심과 좌절감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2.

침대에 엎드려 훌쩍이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당장이라도 그 친구에게 따지고 싶거나, "그런 친구랑 놀지 마!"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나 잠시 멈춰보십시오. 이 거절의 순간이야말로 아이가 관계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입니다.


3.

이 상황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기질과 인지 발달, 두 가지 층위가 겹쳐 있습니다.


4.

기질의 측면에서 보면, 어떤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관계 지향적'입니다. 타인의 인정과 반응을 자신의 존재 가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해서, 사소한 거절도 자신의 전 인격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입니다. 심리학자 엘레인 아론(Elaine Aron)은 이러한 아이들을 '고감도 아이(Highly Sensitive Child)'라고 분류했습니다. 전체 아동의 약 15~20%가 이 범주에 해당하며, 이들은 감각적, 정서적 자극을 일반 아이들보다 더 깊고 세밀하게 처리합니다. 이것은 아이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이 주신 기질적 강점이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하는 것입니다.


5.

인지 발달의 측면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피아제(Piaget)의 인지 발달 이론에 따르면, 초등 저학년 시기까지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친구가 "지금은 혼자 놀고 싶어서" 혹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서" 거절했다는 복합적인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나를 싫어해서" 거절했다고 단순화하여 해석합니다. 타인의 관점과 자신의 관점을 구별하는 데 아직 서툴기 때문에, 친구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6.

이 두 가지가 겹칠 때 문제가 커집니다. 관계 지향적 기질을 가진 아이가 자기중심적 사고 단계에 있으면, 친구의 단순한 거절이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핵심 신념으로 굳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핵심 신념이 어린 시절의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합니다. 한두 번의 거절이 문제가 아니라, 그 거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이의 정서적 기초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7.

그렇기에 부모의 반응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반응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수용하는 것입니다. 풀어 말하면 아이가 울고 있을 때는 어떤 가르침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친구가 거절해서 무안하고 슬펐구나"라고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해결책은 그다음입니다.


8.

아이가 진정되었다면, 그때 인지적 재해석을 도와야 합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아이들이 부정적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고 분석했습니다. 영속성, "앞으로도 항상 이럴 거야." 보편성, "모든 친구가 나를 싫어해." 개인화, "다 내 탓이야." 거절에 취약한 아이들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9.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이 세 가지 해석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깨뜨려 주는 것입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잖아. 지난주에는 같이 놀았잖아." "다른 친구들은 어때? 00이는 너랑 잘 놀잖아." "네 잘못이 아니라 그 친구의 선택이야." 이 작업이 반복되면 아이는 거절을 과잉 해석하는 패턴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부모인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인지적 재해석만으로는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0.

성경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시 118:22)고 말합니다. 가장 완벽하신 예수님조차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버림받으셨습니다. 3년을 함께한 제자들도 도망갔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거절의 아픔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에,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영적 안전기지가 됩니다.


11.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는 거절당하셨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거절당하신 후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거절한 사람들을 원망하셨습니까. 관계를 끊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거절한 자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도망갔던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네 양을 먹이라"(요 21:17)고 하시며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12.

이것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관계의 원리입니다. 거절당했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상대를 원망하거나, 아픔을 안고서도 다시 따뜻하게 다가가거나. 예수님은 후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인류 역사를 바꿨습니다.


13.

아이에게 "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까지 친절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정직한 질문입니다. 이때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따뜻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착해서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거야." 요한일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따뜻함은 성격이 아니라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 순서를 아이가 이해할 때, 거절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 생깁니다.


14.

그렇다면 거절의 아픔 이후 아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시 관계를 향해 걸어갈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훈련은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거절 이후의 대안을 미리 연습해 두는 것입니다. "같이 놀자"라고 했는데 "싫어"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다음 문장을 가정에서 함께 만들어보십시오. "그러면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그거 같이 해도 돼?" 혹은 "알겠어, 그러면 다음에 놀자." 거절 이후 얼어붙지 않고 다음 문장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거대한 성공 경험이 됩니다.


15.

다음으로, 거절과 거부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거절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렵다'는 의미이고, 거부는 '너라는 사람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거절이지 거부가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00이가 오늘 너랑 안 놀겠다고 한 것은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늘 그 놀이가 하기 싫었던 거야. 너를 거부한 게 아니라 상황을 거절한 거야." 이 구별을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면 아이는 거절 앞에서 자기 존재를 지키는 법을 배웁니다.


16.

자녀 양육은 곧 아이의 예배 대상을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친구의 수용 여부에 과도하게 매달린다면, 아이의 마음속에 '친구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의 인정, 사회적 평판, 자녀의 성공에서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는 우리 어른들도 같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함께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17.

사랑하는 부모님, 아이가 겪는 거절의 아픔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거절을 경험하고 극복한 아이는 타인의 거절을 존중할 줄 알고,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단단한 아이로 자라납니다. 거절당한 후에도 다시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이, 그 힘은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복음의 확신에서 나옵니다.


18.

한 줄 기도,

"하나님, 거절의 아픔 앞에서도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 아이가 되게 하소서.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먼저 다가갈 줄 아는 따뜻한 아이가 되게 하소서."


유찬호 목사 | 등대교육공동체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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