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할 때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아이

아이의 광야를 함께 걷는 부모 - 기질과 발달로 이해하는 기독교 교육

by 인생질문

발표할 때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아이


1.

"선생님, 우리 아이는 집에서는 목소리도 크고 또박또박 잘해요. 그런데 학교에서 발표만 하면 목소리가 개미만 해져요." 학부모 상담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2.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으면 좋겠는데,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잇는 아이를 보면 부모의 마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으로 타들어 갑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기가 죽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3.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시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감각이 급격히 발달합니다. 어릴 때는 자기 세계가 전부였던 아이가 이제 또래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틀려서 아이들이 웃으면 어떡하지?" "바보 같아 보이면 어떡하지?" 발표할 때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은 이 거대한 압박감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으로 아이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4.

그리고 한 가지 더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집에서 혼자 말하는 것과 수십 명의 시선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과제입니다. 아이들에게 "크게 말해!"라고 다그치는 것은 수영을 못하는 아이에게 "왜 안 뛰어들어!"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다그침이 아니라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단계적인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생각해봅시다.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그토록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된다"(잠 29:25)고 말합니다. 사람의 인정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 전체를 지배하면 올무가 됩니다.


6.

아이는 무의식중에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완벽하게 보여야 해. 비웃음을 사면 나는 끝이야."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적인 사랑 안에서 안식하지 못하고, 또래들의 평가라는 불안한 기준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작은 실수조차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7.

저는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친구들의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틀리면 안 돼"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크게 말해!"라는 부모의 또 다른 압박이 아닙니다. 내가 완벽한 발표자가 되지 않아도, 말을 더듬어도, 얼굴이 빨개져도, 여전히 가치 있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 그것이 먼저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8.

첫째, 아이의 두려움을 비난하지 말고 먼저 안아주십시오. "왜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 자신감 좀 가져!"라는 말은 아이의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앞에 나가서 말할 때 사람들이 다 너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많이 떨리고 무서웠지? 엄마도 어릴 때 친구들 앞에서 책 읽을 때 목소리가 막 떨린 적이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것처럼(히 4:15), 부모가 먼저 아이의 두려움에 공감해 주십시오. 아이가 부모를 심판관이 아니라 안전한 피난처로 느낄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립니다.


9.

둘째, 가정에서 단계적인 연습의 기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처음에는 부모 한 사람 앞에서만 말해보게 하십시오. 그다음에는 인형이나 봉제 동물을 앞에 앉혀놓고 눈을 맞추며 말해보게 하십시오. 그다음에는 가족들 앞에서 발표하고 긍정적인 반응만 주고받으십시오. 이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 아이의 마음 근육이 자라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 줄 더 눈을 맞추고 얘기했네!"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용기 낸 과정을 칭찬해 주십시오.


10.

셋째, 두려움의 실체를 함께 들여다보는 대화를 해 주십시오. "네가 발표하다가 말을 더듬거나 틀리면, 최악의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질문은 아이가 자기 안의 두려움이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돕습니다. "친구들이 조금 웃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고 네가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사실이 바뀔까?" 이 질문은 아이의 시선을 사람의 평가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옮겨줍니다.


11.

넷째,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봐 주십시오. "우리가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이려고 너무 애쓸 때,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커져 버린 걸지도 몰라. 그럴 때는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 이 대화는 아이에게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두려움의 뿌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가져가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12.

사랑하는 부모님, 우리 가정은 아이가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가기 전, 마음껏 틀려보고 마음껏 실수해도 안전한 리허설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한숨을 쉴 때, 부모인 우리가 먼저 조급함과 답답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세상의 평가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13.

아이가 완벽한 발표자가 되기를 기도하기보다, 사람들의 평가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14.

한 줄 기도, "하나님, 우리 아이가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담대해지게 하소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은혜의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를 기쁘게 낼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유찬호 목사 | 등대교육공동체 교목

biblestor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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