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광야를 함께 걷는 부모 - 기질과 발달로 이해하는 기독교 교육
1.
"쟤가 먼저 때렸단 말이에요! 왜 나만 혼내요? 나도 맞아서 똑같이 해준 것뿐인데!"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아이 앞에서 부모님은 깊은 한숨을 쉬게 됩니다.
2.
친구와 다투다 똑같이 맞대응을 하고 온 아이를 볼 때 부모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맞고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지' 싶어 내심 안도하다가도, '이러다 폭력적인 아이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래도 같이 때리면 안 되지!"라고 훈육해 보지만, 아이는 반문합니다. "그럼 바보처럼 맞고만 있어요?"
3.
이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이야말로 아이에게 분노를 다루는 법, 정의를 이해하는 법, 그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먼저 아이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4.
피아제(스위스의 발달 심리학자)에 따르면 이 시기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은 산처럼 크게 느끼지만, 자신이 상대에게 가한 타격이나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은 아직 부족합니다. 아이의 눈에는 지금 철저히 자기가 피해자입니다. 상대도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아직 닿지 못합니다.
5.
도덕성 발달의 측면에서도 이해가 필요합니다. 콜버그(미국의 심리학자)에 따르면 이 시기 아이들은 '네가 나를 한 번 때렸으니 나도 한 번 때려야 공평하다'는 거래적 도덕성의 단계에 있습니다. 어른의 눈에는 보복이지만, 아이의 눈에는 정의입니다. 아이는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공정함을 실현한 것입니다.
6.
여기에 더해 아이의 뇌도 아직 공사 중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전두엽은 아동기에 한참 발달하는 중입니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시겔(미국의 정신과 의사)은 이 시기 아이들의 뇌를 '공사 중인 건물'에 비유합니다. 화가 나는 자극이 주어졌을 때 잠깐 멈추고, 결과를 예측하고,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능력은 뇌의 성숙과 함께 점진적으로 발달합니다. 아이가 악해서 같이 때린 것이 아닙니다. 아직 브레이크가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7.
한번 더 깊이 생각해봅시다. "쟤가 먼저 잘못했으니 내가 응징하겠다"는 마음의 뿌리에는 '내가 내 세계의 심판자가 되겠다'는 강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이는 하나님이나 부모, 교사에게 정의를 맡기는 대신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자신의 법을 집행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 정의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사실 우리 어른들도, 그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8.
심리학자 제임스 길리건(미국의 정신과 의사)은 폭력의 가장 깊은 뿌리가 '수치심'이라고 밝혔습니다. 맞았다는 사실 자체보다, 맞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수치심이 아이를 보복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똑같이 해줬다"고 말할 때, 그 말의 이면에는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존재 증명의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모의 훈육은 아이의 마음에 닿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부모의 반응에는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9.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억울함과 분노를 읽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지금 부모마저 자신을 비난할까 봐 잔뜩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먼저 때려서 정말 아프고 화가 났겠구나. 엄마라도 그런 상황이면 무척 억울하고 화가 났을 거야." 이것은 아이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수용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것처럼(히 4:15), 부모가 먼저 아이의 고통에 공감해 주십시오. 아이는 자신의 아픔이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부모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합니다.
10.
아이가 진정되었다면, 시선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에서 '네 마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로 옮겨주어야 합니다. "친구가 먼저 잘못한 것은 맞아. 그런데 네가 똑같이 주먹을 휘둘렀을 때, 네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니?" "우리는 친구의 행동은 통제할 수 없어. 그러나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어. 같이 때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이 질문은 아이를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상대의 행동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11.
그리고 여기서 아이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만약 누군가 먼저 때렸을 때 똑같이 갚아주는 것이 정답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사람들이 침 뱉고 때렸을 때, 예수님은 천군천사를 불러서 똑같이 갚아주실 수 있었어. 하지만 예수님은 복수하는 대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고 기도하셨단다."
12.
이 이야기를 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참아야지"라고 도덕적 압박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복수하지 않으신 이유를 아이가 이해하게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약해서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정의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너의 억울함을 네가 직접 갚지 않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네가 약해서가 아니야. 예수님을 닮은 진짜 용기야."
13.
그러나 말로만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 충동 조절이 발달 중인 아이에게는 구체적인 대안 행동을 연습시켜 주어야 합니다. "다음에 친구가 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큰 소리로 '하지 마!'라고 말하고 선생님께 가는 거야. 한번 연습해 보자." 집에서 역할극을 통해 화가 나는 상황에서 주먹 대신 말을 사용하고, 자리를 피하는 방법을 몸으로 훈련시켜 주십시오. 비고츠키(러시아의 발달 심리학자,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의 창시자)가 말한 것처럼, 아이가 혼자서는 어려운 일도 적절한 도움과 반복 연습이 있으면 해낼 수 있게 됩니다.
14.
그리고 부모님 자신의 마음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맞고 온 것이 속상해서 "너도 같이 때려!"라고 가르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지는 않았습니까. 반대로, 타인의 시선이 부끄러워 아이의 억울함은 무시한 채 다그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분노와 체면 사이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부모가 먼저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아이를 향한 훈육이 정죄가 아닌 은혜가 됩니다.
15.
사랑하는 부모님, 아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주먹을 쥐고 돌아온 날은 단순히 속상한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분노와 복수심이 당연한 이 세상에서, 아이가 다른 길을 배울 수 있는 귀한 훈련의 날입니다. 같이 때린 아이를 야단치기보다, 부모인 우리가 먼저 아이를 품어주십시오. "네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네가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단다." 이 한마디가 아이의 굳게 쥔 주먹을 풀어줄 것입니다.
16.
한 줄 기도, "하나님, 우리 아이가 억울하고 화가 날 때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똑같이 갚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악을 선으로 이기는 평화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유찬호 목사 | 등대교육공동체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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