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예수를 믿어도 될까?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다.
회개하고, 무너지고, 회개하고 무너지고, 회개하고 무너짐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나를 향한 연민과 포기에까지 이르는 그런 때가 있다.
미움, 다툼, 자기 사랑, 탐욕, 이기심, 성적인 타락에 이르기까지, 남들에게는 들키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알고 내가 아는 죄로 범벅이 되어버린 나를 마주하는 때가 있다.
기독교가 스스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수많은 미디어에서 기독교의 실력 없음을 고발할 때마다 그렇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가 없는데, 사실은 내가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실패로 범벅되어 있구나 깨닫는 때가 있다.
매번 회개할 때마다 흘린 눈물과 결단에 찬 고백과 생각까지 모두 부정되는 그런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너무 커져서, 이젠 거짓눈물 따위 흘리지 않겠다며 죄로 아파하는 것마저 포기하게 되는 그런 때가 있다.
베드로도 그랬다. (마가복음 14장 66~72절)
잡혀 들어간 예수님을 숨어서 지켜보다 걸린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고 듣는 중에 수차례 저주하며 예수를 모른다.라고 예수님을 부인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끝끝내 그들의 마지막 기대를 짓 밝고 죽으신다.
모든 제자들이 도망치듯 뿔뿔이 흩어진 그때에 베드로는 아마 죄송함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자책감이 너무 심해서 가끔은 '그래, 예수님도 그냥 메시아라고 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던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래 보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기 전 말씀하신 그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그 현장을 발견할 이들에게 한 전언을 남기신다.
'마가복음 16장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베드로도 제자이기 때문에 그냥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해도 되는데, 예수님은 굳이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했으니 이젠 더 이상 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따로 말씀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이 이후 베드로를 마주해서 먹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콕 집어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전면에 두고,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는 아마도 '난 이제 제자도 뭣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난 그의 제자일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매번 넘어지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우리가
'난 이제 크리스천도 아니야.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이 구주이심도 알고 믿지만, 나 같은 건 크리스천 일 수도 없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고 외면하는 모습을 들으셨고 보셨다. 그래서 말씀하신다.
" 베드로야~ 넌 처음 나의 제자가 되었을 때부터 한 번도 너의 자격으로 세워지지 않았어. 네가 날 아무리 부인해도, 나는 널 부인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 갈릴리에서 밥 먹자~ "
훗날, 4 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가에만 제자들과 베드로에게라는 표현이 적혀서 전해진다.
마가는 베드로와 함께 사역한 자로 마가복음은 베드로복음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베드로는 매번 이 순간을 기억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사람처럼 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다며 예수를 부인한 삶의 모습으로 자책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줬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반했는데, 그런 나를 아시고 부활하자마자 콕 집어서 나를 다시 초청해 주시더라. 우리 예수님은 그런 분이야. 그러니까 너에게 실망하기보다 예수님을 감사해하며 꼭 부르시는 갈릴리로 나가야 해?'
우린 늘 죄와 싸워야 한다.
우리의 죄는 그냥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그 죄로 죽으셨을 뿐이다.
'죄짓고 기도하면 되지' 하는 자는 결코!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자일수 없다.
나의 죄짓는 순간순간 사랑하는 예수님을 못 박는 중인데,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가 어떻게 그 순간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우리에게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한다.
스스로를 정죄하는 행동을 멈추라고 말한다.
그러니,
끝까지 아파하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으실 수밖에 없었던 나의 연약함으로 아파하자.
끝까지 사랑하자. 이런 날, 포기하실 수 없어서 아들을 버리시기로 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기꺼이 사람이 되고 미움과 저주를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기를 선택하신 예수님을 사랑하자.
끝까지 미워하자. 내 안에 예수님을 끝없이 못 박는 죄를 미워하자. 너무 미워서 쳐다보지 않을 만큼 미워하자. 예수님이 죽기까지 사랑한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예수님이 죽으실 수밖에 없었던 내 안의 죄를 미워하자.
끝까지 싸우자. 죄를 끝내 이기지 못할 것 같은가? 십자가에서 시선을 멈추지 말고 그다음으로 시선을 향하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시기만 하시지 않았다. 모든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미 승리하셨다. 그러니 끝내 싸워서 그 승리하심을 발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