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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가 아닌 하나님을 꿈꾸자

청년 크리스천. 요셉 편

by 용작가

많은 청년과 청소년 크리스천들에게, 성경 속 인물 중 어떤 인물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요셉은 다윗과 함께 1,2위를 다투는 인물일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직하고 범죄 하지 않고, 꿈꾸는 사람.


그런데,‘어려움 속’이라는 말이 참 그 무게보다는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것 같다.


요셉의 인생에 들어가 보자.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다. 친모가 아닌 엄마가 여럿이다.

배다른 형제도 여럿이다. 그런데, 그 형제들이 다 하나 같이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친구하나 없는 곳에서, 형제들에게 마저 왕따를 당한다.

팔려가고 배신당하고 감옥에 갇힌다.


어렸을 땐, 저 상황이 너무 가혹해서 비현실적인 것 같았지만

살며, 다양한 인생군상을 만나다 보니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인생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줄 때면 결말만 소개해준다.

어려움 속에서 견뎌낸 요셉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지키며 어려움을 이겨내면 하나님이 꿈을 주신다.

그렇게 하면 한 민족을 살리는 총리 같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꿈꾸기보단 총리를 꿈꾸게 만든다.”


나의 교과선생님이었던 우리 엄마가 그랬고, 내가 학생들의 교과선생님이 되어서 받아본 교재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라고 쓰여있었다.


아직 인생을 다 모르는 아이들에게 요셉의 상황을 공감하도록 이끄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요셉은 어땠을까? 요셉같이 하나님을 따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죽고 싶을 것 같아요. 차라리 안 힘들고 총리도 안 하고 말지. 지금 제 상황 같아요. 제 친구가 떠올라요.

총리가 안되고 싶으면 하나님 그렇게 안 믿어도 되는 거죠? 하나님은 왜 그러셨대요? 너무해요.


그렇다. 어른들의 그릇된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지 말자. 그 꿈은 심기지 않는다.


애초에 요셉이 꿈꾸는 사람이었나.

아니다. 요셉은 꿈을 받았을 뿐이다, 그 꿈을 붙들지 않았다.

요셉의 비결을 파헤치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때론 사랑받고, 때론 크게 미움받고, 때론 배신당하고, 때론 잊히고 때론 감사를 받는 한 인생을 보여준다.

우리의 인생과 매우 닮아 있는 한 인생을 보여준다.

조금 괜찮아질 때쯤이면 꿈도 희망도 소망도 다 끊길 법한 나락을 수도 없이 경험한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그 인생의 소망이 끊기려 한다.

그리고 그 끊어짐은 되려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해서 시작된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다, 형제들의 미움을 사고 팔려간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다, 보디발의 아내를 밀어내고 감옥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꿈을 해석하고, 나를 기억해 달라 했지만, 잊힌다.


말씀은 한 인생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춘다. 사랑받고 미움받을 수 있는 인생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따르며 일어날 수 있는 고난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평가한다.

그 모든 순간, 요셉은 형통했다. (요셉이 형통했다고 평가한 것은 성경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하나님 제대로 믿고 살려면 크건 작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 먹어도 될 욕을 먹고, 안 겪어도 될 무시를 겪는다. 최선을 다해 친절하고 용납하지만, 내 부족함 때문인지 돌아오는 건 바보취급일 때가 더 많다.

누릴 수 있는 거 안 누리고 열심히 살았더니, 현실이 참담하다.


말씀을 붙잡고 배우고 견디는 삶이 참담하다.

그런 우리를 세상은 미련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형통하다고 하신다.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고 이스라엘을 세우셨듯이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고 계시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말씀을 따라가는 순종의 결과가 무시 같고, 배신 같고, 절망 같아도 그 속에서 이뤄져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자.

아이들을 그 자리로 초청하자.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자리로 초청하자.

우리도 꿈꾸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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