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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약함 vs 하나님의 선하심

마음속 피어나는 의심과 하나님의 열심.

by 용작가

하나님이 이끄시고 책임지신다.

우린, 이런 종류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면 감사와 함께 작은 의문이 마음속에 피어난다.

왜냐면 하나님이 하신다. 와 같이 하나님의 신실함, 하나님의 선하심, 이끄심 등,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끄시고 책임지신다는 말속에, 우린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이 떠오른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런 죄악덩어리가 저 말 하나에 감사하고 기뻐해도 되는 걸까?

내가 방탕해도 된다는 것일까. 지금의 나로도 그 말이 성립된다면 그것은 정의와 거리가 멀 텐데..

하나님은 사랑이기도 하시지만, 정의이기도 하시잖아.


미디어도 이런 기독교의 핵심을 가만두지 않고 비꼬며 비난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범죄자가 안에서 성경을 보고 회개했다며 자유해지는 장면.

눈앞에 사람을 죽이고, 죄를 지었다며 기도하고 홀가분해지는 장면. 등등..


맞다. 하나님의 이끄심 돌보심등과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모두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정말 미디어와 세상이 비판하듯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너 방종해도 돼, 멋대로 살아도 돼’라고 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청년크리스쳔들이 많다.


이에 대해 2가지 오해가 있다.


1.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오해.

-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사람의 편에서 좋은 일을 이루어 주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 ‘난 엉망이지만, 내가 갈 길을 꽃길일 거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거야.’

- 그렇지 않다. 좋은 부모는 자녀가 옳은 길로 가고 바른 사람이길 바란다. 물론, 성공하면 좋고 하는 일도 잘 되면 좋겠지만, 그 길이 나쁜 길로 가고 나쁜 사람이 되는 길이라면 막을 것이다.

- 하나님의 선하심. 이끄심, 푸른 목장으로 인도하심도 동일하다.

- 하나님의 시선은 내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에 있다. 내가 잘못된 존재가 되어간다면, 하나님은 그런 나를 꺾으실 것이다.

-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변화시키고, 이스라엘의 믿음의 시초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열심’이 연약함에 대한 나의 고집보다 강하다.

- 나의 연약함과 고집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신실함이 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강하며 하나님 사랑이 더 크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나를 향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당신을 이끌 것이라는 말은 꽤나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2. 하나님의 약속의 대상에 대한 오해

- 그러나 그 대상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이다.

- 완벽하지 않지만, 죄와 싸우고 씨름하며 근심하고 전쟁하는 자이다.

- 그런 자들은 결코 책임을 덜었다며 홀가분해하지 않는다. 그 값이 예수의 핏값인 것을 알아서, 아파한다.

- 하나님의 편에 선 자가, 사탄의 편의 일을 해도 된다며 즐거워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성경에서도, 예수님도, 야고보도 그래서 마치 구원론을 흔드는 것 같은 말들을 하는 것이다.

- 네가 살고 있는 모습을 통해 네가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 지 알 수 있을 거야라고 한다.

- 행동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결코 방탕하고 방종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 단 번에, 과거의 삶의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흔적이 삶에 베여있을지언정, 처절하게 그 죄성과 싸운다.


반면, 누가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며,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자냐 비난하고, 미디어가 또 조롱하더라도,

그리고 여전히 율법 앞에 서면 더 깊은 자신의 연약함이 보인대도, 믿을수록 저 뿌리 깊은 곳의 죄의 뿌리가 보여서 그런 비난에도 할 말이 없더라도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백이 있고, 죄가 너무 싫고 선한 빛을 따라가고 싶고,

그 은혜가 자격 없는 자신에게 향한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믿어지고 감사하다면,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당신을 아브라함과 같이 ‘복이 되는 자’로 변화시키고 기르시고 이끄실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처럼. 변화시키고 인정시키기고 따르게 하는 하나님의 열심히 있을 것이다. 그 하나님의 모든 열심까지 포함해서 하나님의 그 말은 진리이다.

* 나의 연약함에 대한 고집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과 신실함이 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강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

창세기 12장 1-2절



P.S 교회에 대한 문화적 이미지, 시대적 이미지로 인해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고,

시대적 고발과 율법, 그 두가지 앞에서면,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자라서 고뇌하는 청년들이 많음은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그 고민을 두고 가끔은 방향을 찾지못해 주저앉거나 공격적으로 변화하거나 스스로 구원을 증명하려던 청년들을 꽤나 많이 만나게 된다.

이 글로 인해, 교회의 교회다움, 하나님의 하나님다움에 대해서 말함으로, 신앙의 중심을 외부에 두지 않고 내면에 둘 수 있길 바래본다.


또한 미디어와 시대적 질책을 그저 오해라며, 사탄의 공격이라며 무시하기보다는, 현시대의 교회에 대한 뼈아픈 질책으로

겸허히 마주하며, 그 소리들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더 성숙시켜 갈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사진 출처) 갓피플, God people

https://cnts.godpeople.com/p/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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