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집에서 혼자 칼국수를 먹으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다가 생각한 것.

by 용작가

산뜻한 봄바람이 지나가고, 너무 습하지는 않지만, 장마 소식이 들려오는 어느 날, 어느 기관과 협의해야 할 일이 있어서 대전에 왔다.

협의를 마치고, 동료들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려 성심당에서 들러 빵을 잔뜩 사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어느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그 집은 대전이 고향인 동료에게 로컬 맛집 알려달랬더니 친절하게 네이버를 검색해서 알려준 집이었고 나는 칼국수와 수육 소자를 시키고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육 준비해 둔 게 다 떨어져서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그날의 협상이 잘 되어 기분이 좋았던 나는 기분 좋게 ‘네! 천천히 주세요’라고 대답하고선

1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적절한 웹툰을 보려고 했다.

그때 앞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마도 동문회일까? 오랫동안 알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듯한 70~80대의 어르신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었고,

그곳에선 이런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내 차세, 보험료, 집 관리비니 뭐니 다 자기가 내줘. 그러지 말라는 데 꼭 그러더라~~ 아들이 불쌍해 아주”

“아니, 경비원 어디 지원이 떠서 지원했더니 내 경력보고서는 이 정도면 스카우트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


‘어?? 이거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 같은데??’ 하며 이야기를 더 들었는데 앞선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신기하다 하며 기다리던 중 10분이 넘게 걸린다던 수육이 생각보다 일찍 나와서, 수육을 한점 물었다.

가지런하게 잘라지지 않고 제멋대로 잘린 고기가 참 맛있기도 하다.


칼국수랑 같이 먹어야지 하고 아직 나오지 않은 칼국수를 기다리며,

잠시 허공을 주시하는 동안 다시 한번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아직도 이전의 이야기가 되감기 된 듯 들려온다.


근데 이상하다.

사람이 7명 정도 되는데 왜 2명만 이야기 하고 있지? 남은 5명은 뭐 하고 계시는 거지???


잠시, 더 귀를 기울여보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야기하고 있는 2명. 관심 없어 보이는 2명, 이제 다하지 않았냐며 그만하라는 1명, 그리고 들어주고 있는 사람 2명.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난 누구로 살고 있을까? ’

‘난 누구로 살고 싶은가.’


칼국수가 나오고, 수육과 함께 곁들여먹다가 쌈에 비빔칼국수를 올리고 수육도 올리고 양파에 특제소스까지 올려서 한쌈을 베어 물면서도 생각은 이어졌다.


누구로 살고 싶은 지 생각하는 데는 1분도 안 걸렸다. 난 잘 들어주고, 사람들 기를 세워주고, 인정해 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서

내가 누구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칼국수도 떨어지고, 쌈도 다 떨어지고, 나올 땐 분명 얼마 안 돼 보였던 수육이 생각보다 양이 많았구나를 깨달았을 때쯤 내 생각도 정리가 됐다.


나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과는 다르게

늘 나를 자랑하고 싶은데, 겸손을 흉내 내고, 다른 사람의 자랑이 듣기 싫고 관심도 없는데, 잘 들어주는 척하는 사람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참 이상하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막~인정받을 때보다, 인정받을 게 있던 없던 자유로울 때 행복하고

누군가 힘들 때 위로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누군가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게 행복하다.


분명 그런데…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인지 증명하라는 소리에 물들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위로해주는 인생보다는

내 안에 텅 빈 공간을 주변의 인정으로 채우려고 애쓰는 인생이 되어있다.


그 인정은 탄산음료처럼 잠깐은 시원하고 자극적이지만

금새 전보다 더 큰 목마름으로 이어지는 걸 아는데도, 불가항력 처럼 그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렇게, 지쳐간다.


계산을 하고, 수육을 시키다가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깐 나눴던 이모님께 감사인사를 주고받고서 역으로 걸어가는 길.


다시 이렇게 다짐해보게 된다.


“높아지기보다는 깊어지는 인생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