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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Aug 07. 2018

짙은 화장한 고등학생들

출근시간, 고등학생들이 서울대공원으로 가을소풍을 가나보다. 4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구간이 혼잡하다. 4호선을 기다리는 여학생 얼굴을 보니 하나같이 짙은 화장을 했다. 앳된 얼굴에 짙은 색조화장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화장하는 친구들은 없었는데…. 저 나이에는 화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예쁜데….’라고 머릿속 목소리가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흠칫했다. 지금 하는 생각이 꼰대들 항상 말하던 “옛날에는~ 말이야, 우리 때는 안 그랬어.”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내벽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쓰여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든 사람이 보기엔 젊은 사람들이 버릇없어 보이나보다.


얼마 전에 초등학생이 된 딸을 학교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 그때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을 봤다. 그 여학생은 가벼운 파우더를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옅은 입술틴트를 칠했다. 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이 화장을 한다는 사실에 개탄했다.


개탄하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를 자각했다. 또 다른 나가 말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왜 화장을 하는 것을 불량한 행위라고 단정 짓는 걸까? ‘나의 학창시절에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은 나의 학창시절이 정답이라는 말인가?


시기가 달라졌다. 사람도 달라졌다. 상황도 달라졌다. 그러면 나의 생각도 변해야 했는데 왜 나는 변하지 않았던 걸까?

아차차,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 아니 육체가 늙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늙었구나. 생각이 새로운 것, 변화를 거부하고 있구나.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것도 젊은 서민들이었다. 과거 정부로부터 인권이 무참히 짓밟혔을 때 들고일어났던 것은 젊은 대학생들이었다.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의 시작은 권력자들로부터 성범죄를 당한 가장 약자인 소수인종 젊은 여성, 아동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세상은 살기 더 편해지고 발전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인권은 과거보다 좋아지고 있다.


이 세상의 혁명은 타성에 젖은 늙은이한테 나오지 않는다. 늙은이는 변화가 두렵다. 늙은이가 보낸 세월에서는 ‘세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내 ‘사는 게 뭐 다 그렇지’하며 타성에 젖는다. 젊은이는 세월이 가면 늙은이가 된다. 세상에 찌든다.

니체는 “젊은이를 타락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고 했다. 젊은이는 늙은이와 달라야 한다. 젊은이는 무모하다. 그들은 모르는 것에 몸을 던진다. 젊은이는 열정이 가득하다. 그로 인해 위험하다. 그래서 젊은이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변화의 시작은 젊은이에게 시작해 서서히 늙은이에게 옮겨간다. 역사는 항상 그래왔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에 본질도 아닌 화장하고 안하고 같은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자. 본질, 근본,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이런 겉치레에 “세상 말세네, 요즘 어린 것들은….”라고 말하는 꼰대는 되지 말자. 딸도 곧 커서 화장을 할 것이다. 낡은 나의 기준이 아니라 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예수님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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