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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Oct 04. 2018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어제 야근을 하고 엄마 집으로 딸을 데리러 갔다.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아빠는 어디 가셨어?”라고 물었다. 엄마가 말했다.

“시골의 큰 고모 시어머니 돌아가셨단다. 급하게 연락받고 거기에 가셨어.”


‘잠깐 시골 큰 고모가 누구였더라?’ 떠올렸다.

“아, 그 고모? 그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잠깐 침묵 후에 말했다.

“잘 됐네. 이제 큰고모가 겨우 편하게 살 수 있겠다.”엄마도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큰고모는 올해 나이가 73세, 시어머니의 나이는 98세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 병수발은 몇 년간 해왔다. 큰고모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때문에 바깥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가족행사에 늘 빠지곤 했었다. 심지어 큰 고모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한테 얻어맞기도 하고, 밥을 하루도 5번도 넘게 차려야 한다고 했다.

말년에만 고생한 것도 아니었다. 큰 고모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됐을 때는 시어머니가 너무나 괴롭혀 못 살겠다고 친정집으로 도망 왔다고 한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집에 가서 죽으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20살에 결혼해 70대가 되도록 자기 인생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늘 시댁에 짓눌려 살았다. 이런 전후 사정을 알고 있기에 큰 고모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에 나도 모르게 "잘 됐네."라고 말했다.

엄마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딸이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잘됐다고 말하는 건 잘못한 거지?”


할머니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나한테 다시 확인한다. 딸이 사람이 죽었는데 왜 잘 됐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딸의 말을 듣고 잘못 된 것을 알았다.


“ 아, 정말 그러네. 사람이 죽었는데, 잘됐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잘못 된 거지. 엄마가 잘못 말한 거 맞아. 고모할머니의 할머니가 어떻게 행동했건, 좋은 세상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하고 하고 말했어야 했는데, 엄마가 잘못 했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다. 나의 입장은 큰 고모의 입장일 뿐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억장이 무너질 일일 것이다. 다른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입장만 생각하고, "이럴 거야"라고 단정 지었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 누군가에는 큰 아픔일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말조심해야겠다. 오늘도 8살 딸에게 40살인 나는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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