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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Oct 05. 2018

차갑게 말했어

딸은 어질러 놓고, 치우지 않는다. 가위를 쓰면 쓴 그 자리에 두고는 ‘다음에 가위 어딨냐’며 찾는다. 엄마, 아빠가 돌아다니며 찾는 게 일이다. 어렸을 때 어리다고 엄마, 아빠가 치워주게 문제였다.


초등학생이 된 딸은 여전하다. 세 살 버릇은 못 고쳤지만 8살부터 고쳐보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위, 풀, 기타 등등 쓴 물건은 바로 제자리에 갖다 놓게 한다.

“먼저 제자리에 갖다 두고 와”


한 번, 두 번 말해도 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금 있다가……”

그러면 나도 세 번째부터는 같은 말이지만 감정이 실린다. 그 말을 들은 딸이 늘 말한다.


“차갑게 말했어. 다시 예쁘게 말해야 들어줄 거야”

적반하장격인 딸의 말에 내가 답했다.


“네가 한번, 두 번 말했을 때 치웠으면 그럴 리도 없잖아. 엄마가 처음에 말하면 좀 들어라.”


확고한 얼굴과 말투로 딸이 말한다.

“그래도 차갑게 얘기하면 안 돼! 다시 예쁘게 말하면 들어줄 거야”

끓어오를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사랑스러운 말투를 흉내 내며 다시 말했다.


“딸, 가위 제자리에 갖다 줄래? 그래야 다음에 쓸 일 있을 때 바로 찾을 수 있지? 이쁜 내 새끼”

딸은 그제야 몸을 일으켜 가위를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불현 듯 아이가 쓰는 “차갑다”라는 말이 가슴에 훅 들어온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오는 말의 온도를 느끼고 있었다.


말에는 화자의 온도가 있다. 차갑고, 따듯한 정도의 감정의 온도. 당연하지만, 내가 놓치고 있어서 보이지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

누구나 언어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촉수를 갖고 있다. 그 촉수의 민감도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어느 누군가는 기품 있는 척 고귀한 척 말하지만 귀 기울여 듣는다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또 어느 누가 사랑을 말할 때 제대로 듣는다면 거짓을 구분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직감으로 느낌적인 느낌으로 느낄 뿐이다. 내가 지금 할 일은 온 몸의 촉수를 발동시켜 느껴야하는 일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타고난 촉수가 녹슬지 않도록 갈고 닦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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