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나는 '이런'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면 답답하다 말할 때가 많았다.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결론을 앞에 말하기 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하고 싶은 말을 대화 끝에 다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람들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내 모습이 답답한 것은 나도 매한가지여서 생각을 정리하여 편지로 전달하곤 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된 이후 종종 나에게도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시를 읊어 주기도 했다.
종종 글을 쓰던 습관은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나 사는게 너무 바빠서 그랬던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쓸 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글쓰기가 나의 수익률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생각했던 것 같다.
순전히 나만을 위한 끄적거림이 내 삶에 무슨 풍요를 주리... 그런 생각들을 했던 기억은 있다.
그런 와중에 어제 이름모를 이에게 보낼 편지를 쓰며 괜히 즐거웠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내 글을 읽고 본인의 생각을 담아 질문을 던지는 것도 참 새롭다. 과제, 공모전 등 주제가 정해진 글을 쓰는 것은 많이 해보았지만 생각나는대로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라 부끄럽기도 하다.
새벽 6시, 이미 질문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질문 2: 나는 19살 때부터 앞만 보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가족과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열심히 달려온 길에 성과도 인정받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꽤 괜찮은 여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문득문득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네요. 그렇게 10여 년을 달려온 지금, 한 번쯤 멈춰 서서 그동안의 내 인생을 정리해보아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어쩌면 작은 사춘기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어제보다 기쁘고 즐거운 삶, 즉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오늘은 회고록을 쓰듯이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아주 어릴 때, 저는 1) 재밌는, 2) 꿈이 많은, 3) 자신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저는 웃음이 많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물론, 지금도). 별 다른 생각 없이 말했는데, 생각이 특이하다며 웃는 사람들을 보면 저 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본래 타고난 성향이 우울감에 오랫동안 빠져 있는 성격이 아니기에, 힘들더라도 금방 잊어버리고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난스러운 제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외로움에 힘들었던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꿈도 정말 많았습니다! 장래희망의 경우, 과학자, 의사, 대통령, 교수, 회사원, 수의사, 사회복지사, 펀드매니저…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제가 봐도 공통점이 정말 없네요. 그러한 직업을 갖고 어떤 것을 할지, 무슨 목표를 세웠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왜 그 직업들을 선택했는지 이유도 기억나지 않지만 장래희망을 바꿀 때 ‘과학자는 안되고, 의사가 될 거야’ 보다는 ‘과학자와 의사 둘 다 될 거지만, 먼저 의사가 될 거야’로 생각했던 것은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 저는 말이 많고, 사람들 웃기는 것도 좋아했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말할 때 감정이입을 잘해주었기에 사람들도 저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는 너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아’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스무 살 때 서로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주제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우정 이런 이야기를 할 시기인지라, 모든 것을 말하라는 그 아이들 앞에서 하기 싫다고 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해서, 나의 약한 부분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또한 말한다 한들 눌렀던 감정이 올라와 힘들어질 뿐 상황이나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음을 알고 있기에 굳이 그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 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글이 외길로 많이 샜는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바로 생각난 것은 유치원 대신 태권도 도장을 다니는 저였습니다. 이 역시 에피소드가 기억 나기 보다 단편적인 순간들만 기억나는데, 그냥 웃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냥 행복했나 봅니다.
어쩌다 보니,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마지막에 나오게 되었네요. 여러 문장으로 묘사할 만한 콘텐츠도 없을뿐더러 몇 단어면 충분히 설명되기에 저도 모르게 뒤로 미뤘나 봅니다. ‘아주 어릴 때’ 저는 피카츄 돈가스 하나에도 웃음 짓던, 국진이빵 스티커를 보며 웃음 짓던 밝고 애교 많은 아이였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빠 마중 나가는 게 너무 좋았던, 아빠가 저를 안고 하늘 비행기 태워줄 때 무서우면서도 절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 속에 까르르 웃던 아이였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즐거운 그런 아이였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