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3일차: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린 시절 나의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

by 읽쓰생정

3일차



질문 글쓰기 강사는 단순히 질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써서 보낸 글들을 본인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여 보내주었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마주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강사가 보내준 글과 내 글을 비교해 보면, 컨텐츠는 동일한데 서술하는 방식이 달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아침 6시, 질문이 메일로 오는 시간에 맞춰 나도 새로운 마음을 증명할 겸 일어나려 했으나 첫날부터 실패했다. 요근래 야근이 많아져 밤 12시 이전에 잠드는 것이 쉽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시간 정도만 자도 쌩쌩했는데, 이제는 최소의 피로가 풀리는 시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알람도 못 듣는다. 그렇다고 저절로 눈이 떠져 하루를 시작할 때 한껏 개운한 것도 아니다. 종합영양제를 먹으면 피로회복에 좋다고 하여 종로에 가서 하나 사 오려 한다.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까라는 마음도 들지만, 남들 다 똑같이 살고 있는 일상에 의문을 가져봤자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기에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는다.



수신 메일함을 열어 오늘 질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질문 3: 엄마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빠를 마중 나갈 때 나는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지만 그중에서도 '이런' 것은 특히 어린 나에게 더욱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 아들이 생긴다면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이런' 일들을 특별히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



엄마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빠를 마중 나갈 때 나는 이유 없이 마냥 설레는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지만 그중에서도 버스에서 내린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먹은 산오징어회는 특히 어린 나에게 더욱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빠 마중 나가자’라는 말에 누나와 나는 옷을 챙겨 입습니다. 엄마가 동생을 품에 안고 뒤따라오면 누나와 저는 조잘거리면서 언덕 아래를 내려갑니다. 초등학교와 시장을 지나면 저 멀리 버스에서 내린 아빠가 보입니다. 그렇게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같지만 너무나도 다른 그 길에 소중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다른 시장이 2개나 있었고, 길목에는 짜장면, 분식집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장을 보거나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았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이 시작되는 부근에 이따금 산오징어회를 파는 트럭이 왔습니다. 트럭이 있는 날이면 대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먹었는데, 수족관에 헤엄치는 오징어를 보며 대화하곤 했습니다. 분명히 죽었는데도 움직이는 오징어 다리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젓가락에 말아준 오징어 몸통이나 다리를 들고 먹고 있으면 엄마, 아빠는 웃기도, 슬퍼하기도, 화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오징어회를 먹었다는 사실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중 나가던 발걸음, 길목, 트럭 확성기 소리, 다 먹고 올라가던 언덕 등 오징어회를 둘러싼 수많은 순간들이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평소에 생각도 하지 않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을 보니, 매미가 울고, 낙엽이 지고, 눈도 오는 그 기억이 저에게 참 소중했나 봅니다.


강원도 어딘가. 길이 이뻐서 차에서 내려 찍었다. 내 아들은 이런 길을 걷게 해주고 싶다.



만약 아들을 낳게 된다면, 아이 할머니와 함께 그 거리를 걸으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듯 아들도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같이 걷는 매 순간, 많은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대부분 좋은 쪽으로 왜곡되어 저장된다고 합니다. 망각되는 축복을 받지 못한 기억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품은 채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려나 봅니다. 제가 지금 떠올린 그 기억이 정말 확실한 지 알 길은 없습니다. 설사 왜곡된 기억이라 한들 제가 그 기억에 담고 있는 감정은 온전히 저의 것임을 압니다.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라는 것은 '기억으로써 남아 있게 된 순간'부터 새롭게 존재하는 듯합니다. 사실여부를 떠나 개인이 그렇게 받아들여 자신의 추억이자 기억으로 간직한다면, 그 안에 본인의 감정과 바람을 필히 담았겠지요.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 참 많습니다. 그중 혼자 있는 기억도 있지만, 많은 기억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습니다.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뜻이겠지요. 새삼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게 좋은 기억을 안겨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저에게 조건 없는 관심과 도움, 즐거움,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속마음은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느끼기엔 그랬습니다. 아무런 바램 없이 사람에 집중하여 행동하면 그들도 나중에 좋은 기억으로 저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내 밥그릇 하나 챙기고 보전하기도 어려운 세상 속에서 그런 마음 가지고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 자신의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진실되게 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제 모습이 씁쓸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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