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4일차: 아버지와의 대화

아버지를 생각할 때 드는 나의 감정들

by 읽쓰생정

4일차



질문4: 오랜만에 비가 내렸던 수요일에 적어본 글은 어린 시절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싼 고유한 추억의 향기를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산오징어회를 파는 트럭, 그것은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이자 어린 시절로 통하게 해주는 마법 같은 통로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징어회 이외에도 나는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린시절에 대한 대화를 했던 일이 특별히 따뜻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온전한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만큼 현명합니다. 나는 그 감정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며 오늘을 사는 동력으로 활용합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대화한 내용 중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지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해주는 어린시절 이야기는 친구들과 보낸 학창시절 보다는 가족들과 관계된 이야기가 많았고, 이따금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에 실제로 봰 적은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가족들 모두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항상 강한 모습이셨던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하실 때 눈물을 참기도 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가 다 같이 지내던 그 때를 그리워하신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추억 속 아버지와 함께한 여러 기억은 있지만 대화내용까지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와 한 대화 중 ‘특별히 따뜻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위에 적은 것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지금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모든 말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하고 있지는 않기에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인상깊게 기억나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지금은 딱히 떠오르지 않기에 차라리 아버지에 대해 제가 느끼는 감정을 적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요근래 아버지를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나이가 드시는 것 같아 슬픕니다. 부모님께 받기만 하다 늦은나이에 취업을 하여 이제야 조그마한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생활비를 드릴만큼 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새벽마다 공사장으로 향하는 아버지에게 '집에서 쉬시라' 하는 말도 못하는 제 자신이 작아 보이는 요즘입니다. 몸이 다 상하셔도 돈을 벌기 위해 공사현장으로 나가시는 아버지가 측은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강인합니다. 가족 및 친지들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항상 집에서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으시고 밝게 웃어 주셨던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교회 장로로, 남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십니다. 이익을 쫓지 않고 올곧은 선택만 하신 아버지에게 이득보다 손해가 더 많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아버지 덕분에 저도 저만의 삶의 기준을 잘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자식 세 명의 아버지로써 저의 아버지가 얼마나 큰 짐으 어깨에 두르고 다녔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많이 힘드셨을테지요...


어릴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쉽게 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표현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낯간지러운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고, 입으로 사랑을 표현하기에 앞서 실제로 아버지께 잘 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저에게 물질적으로 무엇을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그저 제가 잘 되기만을 바라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선물하나 살 때도 이리저리 가격을 따져가며 고르는 제 마음이, 그런 제 자신을 보고 있는 제 모습이, 열심히 키워주셨지만 이렇게 밖에 되지 못한 이 상황이 죄송하고 먹먹할 뿐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물질적으로 줄 수 없다면 말이라도 이쁘게 해야 되는데, 그것 또한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고 입바른 소리 하지만 그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못 드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노후에 어떤 것을 꿈꾸시는지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습니다.


막상 글로 써보니, 물질적으로 줄 수 없다면 후회하지 말고 말이라도 감정 가득 담아 아버지께 전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녁에 둘 다 퇴근하고 집에서 만나면, 한 번 말해 보려 합니다.






메일 회신을 보내고 나서, 왠지 부모님을 생각하는 내 자신에 대한 기특함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들었다. 헌데, 동시에 이 글쓰기 강사라는 사람에 대해 약간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매번 질문을 보내줄 때 내가 이전 질문에 쓴 답변들을 강사 본인의 언어로 바꿔서 보내주고 있는데, 그것이 내가 글을 쓸 때 담았던 감정과는 약간은 다르게, 변형 내지 왜곡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전에 보낸 질문과 답변 내용들을 확인해 보았는데, 내가 어리 시절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홍보문구에 적힌 ‘개인에게 맞춘 질문’이라는 것이 정해진 질문을 순서만 바꿔서 보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상술이겠거니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얼굴도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열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기에 친구들에게도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는 별개로 가족에 대한 답답함 또한 마음 한 편에, (숨겨져 있다기 보다는) 떡하니 버티고 있다. 가족은 나의 감정이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울타리이자 동시에 내가 더 자유분방한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기에 내 마음 속에는 이따금 극단의 감정이 소용돌이 친다. 오늘 질문은 내가 부모님에게 죄지었다는, 뭔가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들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렇게 느낀 감정이 인터넷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이 노린 것이었다면 명중했다.


사랑합니다 라고 써놓고서 괜히 멋쩍게 웃었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 질문 주는 사람. 그 사람은 이게 진짜라 생각할까? 나도 내가 쓴 글이 진짜 내 감정이 온전히 담겨 있는 것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인데 그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사실, 수신자가 있는 글을 쓰면서 ‘보든 말든 나는 내 생각을 적겠다’라는 사람 중 정말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런 글들이었다면 일기장에나 적었겠지. 물론 일기도 나처럼 누군가에게 몰래 들켜 읽힐 것을 어느정도 감안하고 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부모님에 대한 내 감정은 뭔지 모르겠다. 벗어나고 싶지만 죄스러움이 동시에 나를 꽉 붙들고 있다. 뭐가 그리 죄스러운건지, 왜 나는 그들에게 항상 죄인이어야 하는지 가끔 생각하지만 이 나이 먹기까지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나이 더 먹는다고 알 것 같지도 않지만 불편한 마음 일부러 더 느끼고 싶지 않기에 더 궁금하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온전히 마주할 기회가 오겠지...


아버지, 사랑합니다 말하려 입 열어보려 하지만,

연습이라도 해볼까 하고 입 벙긋거려보지만,

'아버지!' 이 단어만 내뱉을 수 있을 뿐이다. 나이를 먹어도 감정표현은 참으로 힘들다.


사랑합니다! 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데 이건 단순히 부끄러워서, 낯뜨거워서. 단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니다. '아버지!' 부르고 난 뒤 그 공백 속에 무언가 가득 차 있다. 나의 수많은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물론 그 안에 사랑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너무나 엉켜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은 철 실타래가 그 안에 놓여 있다.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3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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