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5: 나는 이번 주말을 계획합니다. 가족들과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소중한 시간은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때로는 큰 의미 없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그런 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나의 시간에는 이제 '의미'가 발생했습니다. 매일, 매 순간을 더욱 소중히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훗날 내 아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더욱 풍성해지겠지요!
나는 이번 주말 가족들과 ‘이것’을 하며 지낼겁니다.
질문이 참 길다. 가족들과의 끈끈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라는 건가. 이번주말 계획은 딱히 없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죽어라 일하다 좀 쉬고 싶은게 전부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시간 중,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다고 '내가 먼저' 계획한 적은 없다.
가족들과 함께 할 무언가. 그러니까 생일이나 성탄절, 예배 같은 다같이 모여야 되는 약속 빼고 함께 놀러가자던지 밥을 먹자던지 등을 내가 말한 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겁기도 하고 따뜻함을느낄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연락하는 친구들 보다 왜 가족이 더 함께 하기 어려울까.좀 더 솔직해지자면, 어렵다기 보다 같이 있기 싫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꽉 막힌다고 해야할까. 뭔가 억압받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집은 '공부'가 학창생활 가장 많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 잘 해야 되는 덕목이었다.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일관된 기조 속에서 진로에 대한 나의 제안은 번번히 거절되었다. 공업 고등학교(자동차 정비), 상업 고등학교(회계), 방송 특화 고등학교(PD) 등 원서를 접수해보지도 못했다. 자유를 쟁취하라고 하지만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부모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청소년기에게 그 말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학창시절의 경험이 성년이 된 뒤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답변)
이번 주말, 저는 가족들과 함께 김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부모님댁의 건조한 실내 공기를 개선하기 위해 가습기도 사러 가려구요.
김장을 가족들과 함께 한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 볼 수 있는데, 어머니가 먼저 제안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 친척,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김장을 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 홀로 사시는 아래층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웃들에게 본인의 음식을 나눠 주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김장의 양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양이 많아진다 하여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하신 적은 거의 없습니다. 원채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손이 느린 자식들이 답답해 홀로 뚝딱뚝딱 해치우시곤 했습니다. 옆에서 도와준다고 말씀드려도 방해만 된다고 매번 거절하셨구요.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어제 갑자기 이번 주말에 가족 모두가 함께 김장했으면 좋겠다고 가족 채팅방에 글을 쓰셨습니다.
이제 곧 환갑인 어머니, 아버지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변해갑니다. 사소한 말에 토라지시기도 하시고, 본인의 젊은 시절 이야기, 이전에 꿈꾸었던 자신들의 소망들을 말하는 빈도가 점점 많아집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렇게 졸라도 자신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던 분들이 이제 먼저 이야기를 꺼내시는 것을 보면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세 명의 자녀가 모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여러 감정을 느끼시는 듯 합니다. 요즘 '결혼하기 전, 또는 독립하기 전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와 같은 말들을 부쩍 많이 하시는 것을 보며, 내가 너무 외롭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어느새 커버린 우리들을 보며 새삼 세월이 지났음을 느끼고, 저 또한 어느 순간 얼굴에 주름이 생긴 부모님의 얼굴과 전보다 유해지신 성격을 보며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느낍니다.
사실, 변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시간이 참 빠르다’와 같은 간단한 감정보다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조바심이 훨씬 더 큽니다. 요즘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직까지 일하십니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아직도 일하십니다. 제가 두 분의 생활비를 책임질 정도로 능력 있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요.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오랜만에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슬픔도 제 감정이고, 부모님은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저 혼자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처럼 언젠가는 멈출 인생이기에 저 나름대로 그 속도를 줄여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 신자이신 부모님은 하루 빨리 하나님 곁으로 가고 싶다고 웃으며 말씀하시긴 하지만요.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부모님께 커다란 것을 선물하는 것 보다, 멋진 곳을 여행하는 것보다 같이 있어주고 조그마한 것도 함께 하고 이야기나누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밥 먹고 학원 갈 때, 부모님이 못 오신다는 것을 알기에 학교 행사를 집에 알리지도 않았을 때, 외부기관에서 상을 받고 혼자 집으로 걸어올 때 너무나도 절실히 느꼈기에 '함께 있음'의 중요성을 압니다. 그저 시간이 될 때 옆에 있어드리고 정말 잘 안되지만 조금이라도 더 길게 부모님의 말을 들어드리려 합니다.
어쩌다 보니 글이 외길로 많이 샜습니다. 가족 특성 상 이번 주말에도 분명히 서로 투닥거리겠지만, 그 순간도 기억 속에 소중히 담고자 합니다.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3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