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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 노트

spice.09_눈 내리는 마을 [ A Snowy Village ]

by LIFESPICE 김민희
가을의 끝 무렵,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린 'A Snowy Village'_ acrylic painting on canvas / 61X61cm


앗! 12월이 오고 말았다.


멀게만 느껴지던 한 해의 끝은 올해도 역시 갑작스럽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올해는 12월을 앞두고도 꽤나 포근한 날씨였어서 그런지, 나뭇잎이 얼추 다 떨어져 버린 공원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것이 유독 믿기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작년엔 첫눈이 언제 왔더라-엄청 폭설이었는데.... 하고 사진첩을 찾아보니 그때가 11월 27일이었다. 올해는 확실히 겨울이 더디게 오고 있구나 싶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겨울은 그렇게 잠시 마음을 놓고 있는 사이에 별안간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겨울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눈치채고 나니, 요즘 조금 게을러졌던 나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10월 말부터 시작했던 2주간의 작은 전시를 11월에 들어서면서 무사히 마쳤는데,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을 핑계로 삼으니 11월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을은 조금 빨리 보내주어야 할 때가 왔구나 싶다. 그리고 며칠만 더 일찍 겨울로 가기로 한다. 작업방 한편에 도대체 언제 채워질지를 기다리며 나에게 잔소리하는 것 같던 빈 캔버스가 두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드디어 집어 들었다.


디테일컷.jpg

캔버스 위에 여전히 가을의 끝을 지나는 마을의 저녁풍경을 먼저 채워두었다. 높다란 빌딩들도 세워지고, 나지막한 집들도 촘촘하게 들어선다. 공원에는 아직 가을을 다 떨구지 못한 나무들도 빼곡하게 채워둔다. 초저녁 공기는 꽤나 차가워졌고, 며칠 전과 다르게 해가 벌써 넘어갔는지 초저녁 시간에도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아마도 캔버스 안에도 곧 겨울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여미고, 마른 잎이 채 떨어지지 않은 공원을 부지런히 지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퇴근시간 분주해진 거리에 자동차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마을 창문에도 하나 둘, 불이 밝혀진다. 공원 가로등에 일찌감치 불이 들어오고, 어둑해졌던 거리은 금세 환해진다. 부지런히 걷는 발걸음 위로 작은 눈송이가 떨어진다. 첫눈이다! 가로등 불빛에 먼지처럼 날리던 작은 눈송이는 이내 하늘을 뒤덮고, 첫눈인데도 그 기세를 보니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아직 마른 잎을 떨구지 못한 붉은 나무 위로 하얀 눈이 곱게 뿌려지고, 공원은 이내 시끌벅적해진다. 계속 가을에 머무를 것 같았던 세상은 순식간에 겨울로 가 앉는다. 캔버스 안 구석구석 눈을 흩뿌리고 그 위에 한참 더 작은 눈을 뿌리고 나니, 첫눈을 놓치기 싫어 부지런히 밖으로 나온 친구들도 하나둘씩 보인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스노우맨이 반가워 인사를 건네는 페프리카 씨도 보인다. 공원 한편에는 나이가 지긋해진 견선생이 방금 장 봐온 딸기를 벤치에 잠시 내려놓고, 내리는 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제법 심각한 표정의 미간 솜털 밑 눈동자가 진지하다. 까맣게 곱쓸거리던 털이 은빛으로 변한 모습이 벌써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한참 지난 우리 집 뿌선생(슈나우저 강아지)을 닮았다. 조금 추워 보이던 마을의 뒷 산과 저 멀리 차가워 보이는 빌딩에는 따뜻한 모자를 씌고, 포근한 목도리를 둘러준다. 이제 단단히 채비를 하고 겨울을 맞이할 때이다. 이제 진짜 겨울이 왔다.


폭설이 내렸던 2024년 11월 말의 집 앞 공원의 풍경

이제 12월은 시작되었고, 올해는 어느덧 한 달만이 남아있다. 11월을 조금 게을리 보낸 나는 12월 한 달만큼은 알차게 즐겨보고 싶어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본다. 더 늦지 않게 크리스마스트리도 꺼내어 두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 흠뻑 즐기고 싶은 까닭에 호두까기인형 발레도 예매해 두었다. 호두까기 인형 발레공연은 보고 또 봐도 설렌다. 꼭 매년 돌아오는 겨울이어도 매번 반가운 것처럼 말이다. 아! 하나 더 남은 캔버스도 부지런히 채워, 올해의 숙제를 내년으로 넘기지 않겠다고도 다짐해 본다.

그리고 지나간 한 해의 힘들었던 점, 수고로웠던 일 들은 이제 마음속에 간직하고, 대신에 행복한 마음을 충전하고, 첫눈을 기다려야 할 때이다.

올해는 어떤 겨울이 펼쳐질까? 어떤 겨울 그림을 또 그려볼까? 설레는 마음을 가득 채워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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