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 외 다양한 액티비티를 통한 잠재 능력 발굴
"엄마, 나 친구 많이 사귀었어!"
쥬쥬를 픽업하러 학교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쥬쥬가 상기된 얼굴로 달려온다.
"오 정말? 너무 잘됐다. 어느 나라 친구야?"
"어느 나라? 잘 모르겠는데? 친구는 그냥 친구지... 앱순이랑 리카코랑 친해졌어"
나는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 '친구면 그냥 친구지...'
가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너무 어른의 시각으로 편협된 잣대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백인인지 흑인인지 아시안인지, 어디 살고 있는지 등등.
"앱순은 그림을 잘 그려. 리카코는 종이접기를 잘해. 오늘 종이학을 접어줬어."
쥬쥬를 이쁘게 담은 그림 한 장과 노란 연습장을 찢어 접은 종이학을 보여주며 아이는 해맑게 웃는다.
'그래, 아이의 특성을 찾아 키워주는 것, 그게 살아있는 교육이구나...'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배워가는 중이다.
5학년에 올라간 쥬쥬는 어느새 학교 수업은 물론, 숙제도 스스로 척척 잘 해냈다. 영어 리딩 및 라이팅 실력도 빠르게 향상되는 게 보였고, 특히 수학은 큰 무리 없이 항상 좋은 성적을 보였다.
다만, Social Studies는 처음 접하는 ‘캘리포니아 역사'를 다루다 보니 추가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했던 과목이었다. 우리 가족은 주말이나 휴일마다 캘리포니아 역사를 알 수 있는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 학습 겸 여행을 하려고 노력했다.
GATE 프로그램
어느 날 쥬쥬가 시시콜콜한 학교 생활을 이야기하다 말고 책가방을 뒤적이더니 학교에서 보낸 폴더에 들어있는 가정통신문 하나를 쓱 내민다. 'GATE Referral Application'이라고 쓰여있다.
"GATE가 뭐지?" 처음 보는 용어에 첨부된 안내서를 부지런히 읽어본다. GATE(Gifted and Talented Education)는 교육청에서 분야별로 특별한 재능이 보이는 아이들에게 별도의 교육을 시키는 일종의 영재 프로그램이었다. 쥬쥬가 GATE 프로그램 대상자로 추천되었으니 첨부된 서류를 작성해 보내라는 것이었다.
GATE(Gifted and Talented Education Program)는 아이들의 창의력 및 재능을 계발하고 지원하기 위한 캘리포니아의 특별 교육 프로그램이다.
GATE의 1차 선발 기준은 전국 표준테스트(당시 STAR 테스트) 성적 우수자이다. 1차로 추려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OLSAT(Otis-Lennon School Ability Test)를 치르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아이큐 테스트와 유사한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담임 추천서, 부모 정보 등 다양한 factors를 고려해 최종 GATE 프로그램 참여자가 결정된다.
캘리포니아 전국 표준테스트: STAR(Standardized Testing and Reporting) 테스트는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에서 실시한 표준 테스트다. 2014년부터는 새로운 평가 시스템인 CAASPP (California Assessment of Student Performance and Progress)를 도입해 새로운 학생들의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단 한번 GATE 학생으로 등록되면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특별 프로그램에 중학교까지 매년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쥬쥬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학원이나 공부 압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안한 이번 기회는 부모로서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학업적인 압박을 주는 선행학습이 아니라 아이에게 보이는 특성을 더 집중해 향상해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 일단 한번 경험해 보지 뭐.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 두면 되잖아?"
신청서를 접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쥬쥬가 GATE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안내서를 받았다.
GATE 프로그램은 학교 정규 시간이 끝난 오후에 별도로 모임을 갖고 진행되었다. 이 시간에는 수학이나 영어 등 정규 과목을 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별도의 주제를 잡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진행한다.
당시 연구 주제는 '환경(Environment)'에 대한 것으로 '지구를 깨끗하게 보호하기 위해 함께 고민할 과제'가 큰 모토였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환경에 관한 도서를 읽고 작문을 하고, 함께 토론한다. 그리고 지구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해결 방법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그 밖에도 환경오염에 관한 수치를 뽑아 계산하고, 필요한 과학 실험을 거친다. 또 해당 연구소를 방문하고, 환경 보호를 잘 실천하는 기업을 찾아 배우는 현장학습도 실시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에는 부모들을 초청해 그동안 배우고 연구한 결과물에 대한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회에는 각종 프레젠테이션과 아이들이 꾸민 연극 등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다양한 시청각 자료로 보여주었다.
미국 교육을 시키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일반 교육 프로그램 외에 진행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특별상을 수여할 때 해당 학생과 학부모에게만 은밀하게 공지할 뿐 다른 반 학우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같은 반 학우들 간의 위화감 조성을 막고, 아이들 각각의 특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쥬쥬는 조금씩 실리콘밸리 키즈로 성장해 갔다.
쥬쥬가 새로운 환경과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보다 훨씬 빨리 현지에 적응하고 언어습득도 월등히 앞선다. 비슷한 시기에 도착한 부모님들과 이야기해 봐도 ‘어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아이들은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음 호에는 <다재다능한 실리콘밸리 키즈>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업 이외에 동시에 계발해야 하는 아이들의 특별활동에 대해 다뤄보겠다.
Back to School Night
새 학기가 시작한 후 2주 정도가 지나면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Back to School Night>가 열린다. 신학년 담임이 학부모를 초대해 1년간 학습계획과 수업 진행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으로 우리나라에서 학기 초에 진행하는 학부모 총회와 같은 개념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맞벌이인 이 지역은 이 프로그램을 퇴근 후 저녁시간에 진행한다. 한국에 있을 때 이런 총회는 대부분 대낮에 열려 참여를 원하면 회사에 휴가를 내야 했다. 실리콘밸리의 교사들은 이 날 특별히 야근을 하며 최대한 많은 학부모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이 행사에 아이들은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부부 중 한 명만 참석하거나 미리 베이비시터를 예약해 두어야 한다.(캘리포니아는 보통 12살을 기준으로 집에 혼자 둘지 여부를 판단한다. 너무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둘 경우 아동방치법에 걸릴 수 있다.)
교실 입구에 사인업을 하고 교실에 입장해 아이의 이름표가 붙은 책상에 앉으면 세션이 시작된다. 교사는 한 시간 남짓 설명회를 갖고 교실 내부에 미리 준비해 둔 아이들의 작품을 자유롭게 둘러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