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정착 관문(2) 운전면허
실리콘밸리 정착 관문(2):운전면허
실리콘밸리 지역은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이 사통발달 뚫려있지 않다. 특히 취학 자녀가 있어 라이드를 해야 하고, 출퇴근을 해야 할 경우 가족 수대로 차가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자차가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
SSN 만들기가 '시작'
실리콘밸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치러야 할 국가고시는 바로 ‘운전면허시험’이다.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Driver’s License)은 미국살이에 꼭 필요한 대표 신분증’이기 때문이다.
“ID please!”는 공항, 은행, 학교 등 어느 곳에서나 ‘나’를 확인하기 위해 요청된다. 이때 내 얼굴이 박힌 ‘Driver License’를 제시하면 된다.
우선, 운전면허시험 신청에 앞서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만들어야 했다. SSN을 얻기 위해서는 집 주변에 위치한 사회보장국(SSA;Socail Security Administration)에 예약 후 방문하는 일이 첫 스텝이다.
미리 지원서를 접수해 놓고 해당일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SSA 입장 전 가방이며 몸수색까지 철저한 보안검사를 거친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니 내 이름이 호명됐다. 마치 예전 미국 비자를 받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필리핀 계열의 담당자가 몇 가지 기본 질문과 서류 검토를 한다. 그녀는 느닷없이 남편과 결혼상태임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영문으로 공증한 호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주었더니 'original copy'를 보자고 한다.
한국에서 떼어간 호적등본을 영문 공증해 갔는데 굳이 원본을 보겠다고?
결국 그녀가 읽지도 못할 한국말로 된 호적등본 원본과 결혼반지(혹시 몰라 일부러 반지를 끼고 갔다)를 보여주고 결혼 상태임을 확인받았다. 당시 내 비자가 주재원 배우자용 L2여서 남편과의 관계가 꼭 필요했던 것 같다.
2주일쯤 후 SSN 카드가 집으로 배달됐다. 나도 이제 미국 주민번호, SSN이 생긴 것이다. 이 번호는 세금 보고 및 취업, 신분 확인 등 미국 생활에 꼭 필요하므로 원본 카드를 분실하지 않고 잘 보관해야 한다.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다
이제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할 차례다. 이때만 해도 온라인 필기시험이 없고 무조건 오프라인으로 시험을 볼 때였다.
지인의 도움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필기시험 예상 문제지를 얻어 일주일 정도 열심히 공부했다. 생각보다 외울 것도 많고 번역에 오역이 많아 무슨 얘기인지 이해 안 가는 내용도 많았지만 한국인의 저력으로 무조건 암기! (다시 치른다면 번역본 보다는 영어 원본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오역이 많고 어차피 실기시험 때는 영어로 운전용어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운전면허시험장인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로 출발했다. 이때 한국에서 운전을 하던 사람은 한국에서 운전경력 증명서를 떼어가는 게 좋다. 이 증명서가 있으면 정식 면허증이 나오기 전 임시면허 발급이 가능하고 자동차 보험료도 할인된다.
간단한 신체검사와 시험 응시료를 낸 후 사진을 찍고 필기시험 줄로 이동한다. 한국말로 된 시험지를 요청하고 필기시험은 무사히 통과!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임시면허증'이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을 주는데 이 종이쪽지를 실기시험 통과 때까지 사용하면 된다. 가장 빠른 실기시험 일자를 예약하고 귀가한다.
사람 중심의 운전이 핵심
이제부터는 실기시험 준비다. 이미 미국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남편의 도움을 받아 driving test 연습을 한다. 한국에서 이미 10년 이상의 운전경력이 있지만 시험은 역시 부담스럽다.
신호등이 고장 났을 때 직접 해야 하는 기본적인 수신호를 익히고, 한국과 다른 미국의 몇 가지 운전 규칙을 습득한다.
이곳은 무조건 '사람' 중심의 운전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어느 상황, 어디에서 튀어나오던 무조건 차량은 정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동차가 오든 말든 횡단보도를 만나면 무조건 앞만 보고 건너기 때문에 '사람=빨간 신호등'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 비해 '비보호 좌회전'이 많고, 속도가 'Km가 아니라 mile'로 되어있는 등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숙지한다.
특히, 골목길 곳곳에 'STOP' 사인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차량은 사람이 없더라도 무조건 서야 한다. 그것도 잠깐 서면 안되고 최소 3초 이상... 즉, 'zero one, zero two, zero three'와 같이 천천히 셋까지 센 후 출발하는 게 안전하다.
또 차선 변경 시에는 백미러에만 의존하지 말고 고개를 돌려 직접 옆 차선에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 지인 중 백미러만 보고 이동했다는 이유로 패스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실기시험일 아침, 일찌감치 차를 끌고 DMV에 도착했다. 이곳 실시시험은 자기 차를 직접 끌고 가서 시험을 치른다. 기본적인 수속을 마치고 대기장소에 기다리니 인도계열의 실기 시험관이 내 실기테스트 점수를 매길 차트를 들고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오늘 실기시험을 담당할 알리입니다."
40대 초반의 피부가 검은 편인 시험관은 인도 악센트가 강한 이민자였다. 우선 내 차를 둘러보며 이상이 없는지 체크한다. 그 후 운전석으로 와 운전자가 숙지해야 하는 기본 수신호를 테스트한 후 옆자리에 올라탔다.
"새로 이민 오셨나 봐요?" 그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인사를 건넨다. 얼마 전에 입국했다고 하자 이 지역 이민자들 분포 및 그들의 운전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가 긴장을 풀어줄 심산으로 가벼운 스몰토크를 하나보다 하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했다. 시험관은 계속해서 불필요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치 내 집중력을 흩트려 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실기테스트에 몰두하고 싶었으나 시험관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최대한 응수를 하며 도로 주행에 들어갔다.
시험관의 지시에 따라 비보호 좌회전, 사거리 통과,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 제한, 건널목 스탑 등 부드럽게 모든 과정을 잘 마쳤다고 생각할 무렵, 그는 "Parallel parking next to the curb, please"라고 한다. 보도블록 옆 일렬 주차를 하라는 뜻이었다. 일렬 주차(우리나라에서 흔히 해왔으므로)는 내심 자신 있었으므로 거침없이 주차를 시도했다.
그는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한다. 두 번째 다시 시도를 했더니 그는 "curb에서 너무 많이 떨어졌고 너무 과감하게 꺾었다"며 "Fail" 사인을 한다. 솔직히 납득이 잘 안 됐지만 그의 판단은 원래 규정보다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 시험관은 처음부터 나를 패스시키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닌가'라는 억울함을 느꼈지만 뭐 어쩌겠나?
"다시 한번 해보면 안 될까요?" 실기시험관은 매우 단호하게 "No!"를 외친다.
제기랄,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두 번째 시험은 백인 여자 시험관이었고, 동일한 프로세스를 겪은 후 큰 무리 없이 무사히 "Pass" 사인을 했다.
이게 뭐라고... 대학 4학년 때 강남면허시험장에서 운전면허시험에 통과했을 때 보다 더 기뻤던 것 같다.
"YES! 드디어 해냈다."
이렇게 실리콘밸리의 거주민으로서 첫 신분증인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게 된다. 이때 느낀 점은 미국이 매우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특히 공공 기관의 경우) 개인별 권한 역시 많이 주어지기 때문에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무인자동차 시대가 열린다
이미 실리콘밸리에는 무인자동차가 보편화되어 있다. 2022년부터 실리콘밸리에서는 무인차량 서비스가 시험운영되고 있으며, 웨이모(Waymo) 사의 테스트용 차량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우버(Uber)나 리프트(Lyft)와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들도 자율주행 자동차를 통한 택시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무인 차랑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상용화되면 현재의 운전면허증(Driver License)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운전면허증은 미국 전역에서 '나'를 확인시키는 ID카드로 두루 활용되고 있고, 특히 미국 국내선 비행기 탑승 시에는 한국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도 이 카드 하나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므로 꼭 취득할 필요가 있다.
<이민자들의 체류 신분>
실리콘밸리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의 체류 신분은 각양각색이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면 현재 어떤 체류신분으로 머물고 있는지를 종종 확인받게 된다.
우리는 처음 미국 입국 시 남편의 회사 덕분에 주재원비자(L-1 비자)를 취득해 들어갔고, 추후 그린카드를 취득, 영주권자(Permanent Resident Aliens)로 체류했다. L비자는 미국 외 기업에 법인을 둔 기업(다국적 기업)의 직원이 미국 지사로 파견될 경우 발급되는 비자로서, 주재원의 배우자는 L-2 비자를 취득할 수 있고 미국 내 취업 역시 가능하다. 또 자녀들은 공립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내 기업에 취업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 'H-1B' 비자를 받게 되는데, 이를 위해선 해당 기업의 스폰서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에 가장 많은 한국인이 보유한 비자가 아마도 H비자일 것이다. 이 비자의 경우 배우자는 취업에 제한이 있으나, 자녀들은 공립학교 진학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학생신분에게 발급되는 'F1비자', 무역업 또는 비즈니스에 투자한 사람에게 발급되는 'E비자', 취업 및 학업을 위한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발급되는 'J-1 비자' 등 비자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들 모두 해당 비자의 발급 조건이 변경될 경우 체류 허가가 취소되기 때문에 미국 체류가 길어질 경우 일명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영주권(Permanent Resident Card)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