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와 마주하다
"어디를 가도 'For Sale'이 왜 이렇게 많이 붙어있는 거지?"
2007년, 우리가 실리콘밸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궁금했던 점이다.
쿠퍼티노 지역에 아파트를 1년간 리스한 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현지 파악에 나설 때였다. 오래전부터 실리콘밸리에 살던 지인이 계셨는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가능하면 집부터 구매하라"라고 충고하셨다. "우린 애초에 이곳에 1년만 체류할 예정이라 집은 관심이 없다"라고 하자 이 분 말씀이 "지금 집을 구매해 두면 머지않아 큰 부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무렵 쿠퍼티노는 물론, 인근 사라토가, 로스가 토스 등 좋은 지역의 하우스들에 한 집 걸러 매매 사인(For Sale)이 붙어있었다. 최고 학군 지역 내 2000 스퀘어핏 이상의 방 4개, 화장실 3개, 넓은 백 야드를 갖춘 집(일명 "싱글 패밀리 하우스")들이 2007년 당시 70-100만 불 정도의 매물로 잔뜩 나와있었는데, 애스킹 프라이스(매도자가 팔고자 하는 금액)의 10% 금액만 다운페이(현금으로 지불하는 것)하면 나머지 금액은 은행에서 바로 융자를 해 준다고 했다. 즉, 1억만 있으면 실리콘밸리 내 10억짜리 집의 자가소유주가 될 수 있다는 것!
잠시 귀가 솔깃했으나 투자에는 젬병인 우리 부부, 그냥 아파트에 살며 현지 적응이나 빨리 해보겠다고 마무리 지었다. (아쉽게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경제관념이 없었다)
2008년이 되자 더 많은 매물이 헐값으로 시장에 나왔다. 그중 당시 70만 불에 매물로 나왔던 집이 실제로 5년 후인 2013년, 200만 불로 무려 3배 가까이 뛰었으며, 그로부터 다시 5년 후, 2018년에는 400만 불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무렵이 바로 미국의 무리한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부동산 버블이 터지기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우리같이 막 미국에 도착한 외국인도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듬해 2008년 리먼브라더스(Leman Brothers) 사태가 터지기까지 수많은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들이 파산선언을 하고 몰락 함으로써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실리콘밸리 부동산 가격(2) 변동은 <2020년, 부동산 매입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추후에 다시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옆집 아저씨가 짐을 싸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미국 전역에는 매월 평균 70만 명의 실직자가 생겨났다. 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불황 위기가 왔음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따른 금융 위기의 여파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테크 기업에게도 미쳤으며, 비용절감을 위한 특단으로 앞다퉈 대규모 레이오프를 시행했다. 2000년 초반 닷컴 버블이 꺼지며 닥쳐왔던 위기가 다시 돌아온 듯했다.
"아니시 아빠도 실직하셨다고?
이 무렵 잘 알고 지내던 주변 지인들의 실직 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었다. 항상 미소로 인사 나누던 이웃집 인도 가족 아니시네도 비자 연장이 어려워 갑작스러운 귀국을 결정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실리콘밸리의 고용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취업 비자를 받고 체류하고 있는 여러 지인들이 비자 연장을 못해 귀국짐을 싸야 했고, 구직 사이트 및 헤드헌터를 찾는 이는 점점 늘어났다.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열었던 크고 작은 세계 여러 기업들 역시, 규모를 축소하거나 폐쇄하고 본국으로 귀환하는 일이 줄을 이었다. 이 무렵 주변 지인들과도 몇 차례의 송별식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융자금을 갚지 못해 은행에서 매각하는 집 매물 역시 급증했다. 길을 가다 보면 "Foreclosure"라는 푯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는 '금융기관에 의한 집 압류 또는 경매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동산 담보로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하고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경우, 대출을 받은 금융기관이 해당 부동산을 소유하게 되는 절차이다.
실리콘밸리에 불어닥친 금융/경제위기는 그로부터 몇 년간 지속됐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저력은 막강했다.
이곳 체감 물가는 2010년부터 서서히 회복되었고, 2012년부터는 주택 가격 역시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 위치한 애플, 구글, 페이스북(현재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꾸준한 투자와 성장을 비롯, 다양한 벤처캐피털 투자 유입 등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빠른 경기 회복세를 보였으며, 주택시장 안정에도 기여했다.
특히 2009년, 애플이 새롭게 출시한 아이폰 3G 모델은 시장을 강타했고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이어 2011년 아이폰 4S와 iPad 2가 발표되며 애플은 급성장가도를 달린다. 이 무렵 "쿠퍼티노=애플"이란 공식이 생겨났고, 실제로 쿠퍼티노 지역 학교들에 아이패드가 무상 제공되는 등 바야흐로 애플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대표 기업인 구글(마운틴뷰 소재)은 1998년 스탠퍼드 대학교 학생 두 명이 검색 엔진을 개발하면서 출발했다. 2005년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고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OS 개발에 집중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 이어 2006년 유튜브를 손에 넣고 새로운 모멘텀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고, 2007년에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정식 발표했으며, 구글 스트리트뷰와 구글 어스 기능을 강화했다. 이어 2008년에는 크롬 OS를 발표해 웹 기반 운영체제 시장까지 선점함으로써 이 당시 금융위기 와중에도 선두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위기와 기회는 통한다고 했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이겨낸 실리콘밸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다시금 재 도약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 2008년과 2022년 실리콘밸리 탑 10 기업 비교
글로벌 경제위기가 몰아쳤던 2008년과 코로나 위기를 겪은 후인 2022년 실리콘밸리 주요 테크기업 탑 10순위가 어떻게 변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ChatGPT에 물어본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상황 및 조건에 따라 순위는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재미로 보길 바란다)
2008년에 10위권에 있던 기업 중 IBM, HP, 야후가 그로부터 10여 년 후엔 순위권에 조차 들지 못했으며, 넷플릭스, 엔비디아, 테슬라가 새롭게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