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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음 Mar 01. 2024

Ep. 2 38일만에 이삿짐이 도착하다

실리콘밸리 정착 관문(1) 이삿짐

이삿짐 도착


6월 21일 H해운을 통해 운송된 이삿짐이 드디어 7월 28일 도착했다. 만 38일 만이다.


LA에서 통관절차를 거쳐 세관검사를 한 후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산호세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 도착해 2주간을 텅 빈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니 짐 오는 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하루 전날 “내일 11시까지 이삿짐이 도착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미리 이삿짐이 들어오기 가장 편한 길을 확인해 두고, 아파트 관리 오피스에 이삿짐 입고에 대한 주의 사항을 확인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대기했다. 약속대로 11시 10분 전쯤 남미 계열의 한 남자가 벨을 누른다.


"Moving?" 하고 물었더니 "Yes!"라고 답한다.

우리 집이 3층이라 그런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있다. (우리 이삿짐에는 업라이트 피아노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진대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쿠퍼티노 지역 아파트들은 고층이 거의 없고, 최고층이래 봐야 고작 3층에 불과하다. 이삿짐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물론 없다.  


"겨우 남자 둘이 우리 짐을 다 나르겠다고?"


3층까지 올라오는 가장 쉬운 통로를 안내해 준 후, 과연 이 짐들을 어떻게 나르나 지켜보기로 했다.


다부진 체구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둘은 거뜬히 무거운 짐들을 척척 짊어지고 나른다. 잠시 후 “침대는 조립까지 해줄 수 있지만 TV나 나머지 짐은 그냥 올려만 주고 가겠다”라고 한다.


"헐... 이건 한국에서 얘기와 다르잖아..."


2시간여 동안 총 38개 박스와 피아노를 올려다 놓더니 침대만 뚝딱 조립하고 끝났다고 사인하라고 한다. 흑... 우리나라 포장이사 개념과는 너무도 다르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우리 부부의 몫이다.

 

"연장통이 어느 박스에 있더라..."  


혹시 다음에 다시 짐을 싼다면 연장통을 가장 찾기 쉬운 박스에 넣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해외 짐인 만큼 테이프와 뽁뽁이(깨지지 말라고 만든 비닐)로 칭칭 감겨있고 어떤 것은 나무로 박스를 덧대기도 해 두어 짐을 푸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이보다 더 엄청난 일은 바로 뜯어낸 포장용지들... 베란다로 쌓아둔 박스만 해도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아도 넘칠 정도로 엄청난 양이 나왔다. 이런 포장재는 원래 배송한 업체가 책임지고 가져가는 게 우리 인심 아니던가?


"여기가 미국이구나..."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휴우~ 그래도 짐을 다 꺼내고 대충 자리 잡고 나니 이제 미국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다.


아…TV세팅이랑 220 볼트를 110 볼트로 전환하는 일이 남았구나...




산호세에는 한국마켓도 여러 개 있고 동양인도 많아 낯선 타향의 서러움이 비교적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한국이 항상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한동안 이곳에 머무를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미국 생활이 익숙지 않아 도착하자마자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없다면 다음 몇 가지는 꼭 가져오는 게 좋을 것 같다.


(* 아래 리스트는 2007년 당시 작성한 것으로 지금과는 차이가 많으며, 지극히 주관적 의견임을 미리 밝혀둔다.)


미국 올 때 가져오면 좋은 것들

- 맘에 드는 서적 : 한국이 생각날 땐 한국작가의 책들이 그리워진다. 올 때 달랑 한 권 사온 이상문학작품집이 왜 이리 재밌는지... 좋아하는 작가의 서적은 몇 권 꼭 사들고 오자. 며칠 전 한국식당에서 우연히 찾은 여성지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 한국과자 : 이건 한국마켓 가면 물론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입과자를 꺼리듯 이곳에서 먹는 한국과자 맛은 2%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바다 건너 오랜 시간 운송하느라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방부제도 좀 더 들어갔을 테고 제조일자도 많이 지나서이지 않을까? 요즘은 방금 나온 맛있는 한국과자가 무지 당긴다. 특히 초코x이, 새x깡, 초코xx 등등 한국에선 잘 안 먹던 것도 지금은 왜 이리 맛있는지...

- 코펠/수저세트 : 처음 도착해서 이삿짐이 도착할 때까지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것이 한국에서 들고 온 코펠이었다. 라면도 끓여 먹고, 찌개도 끓이고, 냄비, 프라이팬, 공기, 주걱, 국자까지 골고루 갖춰진 2인용 코펠이야말로 효자품목이었다. 한 가지 더 가져왔어야 하는 게 바로 수저세트. 여긴 나이프 포크세트는 어디서나 흔히 팔지만 수저세트는 맘에 드는 물건을 찾기 어렵다. 우린 그래도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어야 제맛 아닌가?

- 건어물, 젓갈 : 이건 세관 통과 시 상당히 조마조마한 물건들이다. 그 때문에 나도 겁나서 엄마가 싸주신 것들을 대부분 다 두고 왔으나 살짝 숨겨온 명란젓과 오징어젓!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썰렁한 빈 집에서 햇반과 함께 먹으니 산해진미 저리 가라였다. 이 젓갈이 다 없어지는 날 왜 이리 서운했던지... 한국마켓에 건어물은 다 있으나 왠지 제맛이 안나는 것 같다. 요령껏 들고 들어오면 다 자산!

- TV, 오디오, 컴퓨터 : 이삿짐으로 보낼까 말까 가장 고민한 것이 바로 가전제품. 가져가는 게 좋다 나쁘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난 최소한 TV, 오디오, 컴퓨터는 들고 오는 게 맞았다고 본다. 웬만한 가전제품, 특히 TV는 변압기 없이 잘 호환된다. 오디오와 랩탑, 데스크톱 컴퓨터 모두 변압기를 통해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구형 TV나 성능이 떨어지는 가전제품, PC는 가져오지 말고 데이터만 받아와 여기서 새로 사는 게 현명하다. 특히 이곳 TV가격은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착하다.

- 침대 : 도착해 침대를 구매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매트리스 종류는 왜 이리 많으며, 침대프레임은 뭐 이리 복잡한지... 또 주문해서 배달받는 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렸다. 만약 한국에서 사용하던 침대가 나쁘지 않다면 들고 오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이삿짐을 붙일 계획이라면 말이다. 물론 요즘엔 아마존이나 IKEA에서 저렴한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 피아노 : 가져온 짐 중 가장 잘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피아노다. 이삿짐을 챙길 때 보낼까 말까 가장 고민한 것도 이 놈인데, 이곳 생활이 단조롭고 주변과 왕래가 많지 않은지라 외로울 때 피아노가 큰 벗이 됐다. 특히 아이가 있다면 꼭 챙겨 오는 게 좋을 듯하다.(무겁고, 오는 동안 스크래치도 많이 나고, 자리도 제법 많이 차지하긴 하지만... 그래도 활용도나 만족감이 그 이상이다)

- 화장품 : 사용하던 화장품은 넉넉히 챙겨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백화점에 가면 다 살 수 있지만 처음 도착해 모든 것이 세팅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애용하던 화장품을 가져오거나, 미국 들어올 때 (세관검사가 귀찮긴 해도) 면세점에서 최소 한두 달간 사용할 화장품은 미리 구매해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져올 필요 없는 것들

- 옷/신발 : 물론 기본적으로 입던 옷들은 다 들고 오자. 하지만 미국 온다고 새로 장만할 필요는 전혀 없을 듯. 미국 와서 감동한 게 옷, 신발가격이 너무 싸다는 점이다. 물론 안 쓰는 것보다야 쓰면 비용이 들겠지만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알려진 브랜드의 옷이며, 신발을 저렴하게 살 기회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입던 정장류는 이곳 콘셉트와 잘 안 맞고 웬만해선(업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입을 일이 거의 없다. 올 때 이민가방 한 개를 가득 채웠던 정장들이 한쪽 구석을 차지한 채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 청소기 : 이곳 아파트 바닥은 대부분 카펫으로 되어있어 우리나라 청소기는 맞지 않다. 변압기를 써가며 사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와서 장만하는 게 좋다.

- 무거운 가구 : 이곳은 이사가 다 돈이다. 조립식 가구나 가벼운 것이 아닌 무게가 나가는 고가 가구는 이동하면서 상처도 나고 이사 다닐 때마다 고역이다.

**만약 이사 비용을 대주는 조건으로 들어오거나 어차피 이삿짐을 싸야 한다면 사용하던 짐들은 가급적 다 갖고 나오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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