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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음 Aug 07. 2024

두 번째 여행: 12시간의 비행

예상치 못한 시련


"또리야, 미국하고 bye 해!"


드디어 엄마를 만나러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에요. 누나는 나를 데리고 집 주변을 돌며 마지막 산책을 해요. 내가 태어나서 1년 반 동안 살아온 고향 실리콘밸리와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에요. 집 앞 공원에 산책 때마다 만났던 강아지 친구들이 보여요. 아빠는 자동차에 짐을 잔뜩 싣고 떠날 준비에 분주해요.

나의 고향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날이에요.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누나 캐리어에 들어가서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어요.


눈을 아리게 하는 아름다운 석양이 차창 밖으로 펼쳐져요. 12시간 동안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밤 비행기를 타고 자면서 가는 게 내가 덜 힘들 것 같아 저녁에 출발하기로 했대요.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 어둑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고 여러 종류가 뒤섞인 낯선 냄새가 나요. 난생처음 느끼는 새로운 분위기라 긴장되고 불안해요. 아빠와 누나가 함께해 든든하기는 한데 왠지 앞으로 무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도 나는 잘 참을 수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보고 싶은 엄마와 만날 수 있으니까요.

아빠랑 누나랑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요

"또리야, 이제부터는 혼자 잘 버텨야 해. 잘할 수 있지?" 아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커넬에 태워요. 내 보금자리, 커넬 안에는 목마르면 빨아먹을 수 있는 물통이 매달려 있고, 익숙한 냄새의 폭신한 패드, 그 아래 배변패드가 깔려있어요. 물론 내가 좋아하는 병아리 인형과 당근모양의 장난감도 함께요. 그동안 누나랑 연습을 하도 많이 해서 커넬 안에 있으면 세상 편해요. 하지만 오늘 저녁을 먹지 못해 배가 좀 고프긴 했어요. 비행기 타기 6시간 전에는 멀미 때문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대요.


아빠는 내 커넬을 큰 카트에 싣고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해요. 나는 새롭게 마주한 환경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커넬을 타고 이동하는 게 답답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동안 누나랑 연습했던 커넬 안에서의 비행 요령을 기억하며 얌전히 대기해요.


아빠 키보다 훨씬 큰 흑인 아저씨가 누나가 건네주는 서류를 확인해요. 서류에 사인을 하더니 아저씨는 갑자기 내 커넬을 끌고 어딘가로 향해요. 어랏? 나는 아빠랑 누나랑 헤어지는 게 싫어서 “멍멍멍!”하고 막 짖었어요.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는 아랑곳 안 해요.


아빠랑 누나가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요. 누나의 걱정어린 두 눈이 멀리서도 선명히 보여요. 마침내 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요.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안 보여요.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윙윙' 크게 들러요. 바람도 '슝슝' 제법 세게 불어요.


나는 수십 개의 가방들이랑 같이 어두 컴컴한 방안에 남았어요. 누나가 커넬 안에 있으면 절대 안전하니까 무서워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했어요. 병아리 인형을 꼭 쥐고 아빠랑 누나랑 다시 만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기로 해요.


나도 모르게 커넬 안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요.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췄어요. 세찬 바람이 휘휘 불어요.  내 커넬이 카트에 실려 어딘가로 이동해요. 설마 내 커넬이 바람에 날아가는 건 아니겠죠?




갑자기 밖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하얀색 형광등 불빛 아래 내 커넬이 놓여있어요.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스캐너를 이용해 여기저기 살펴요.


내 커넬이 또 움직여요. 육중해 보이는 큰 문이 열렸어요.

 

'멍!' 저 멀리에 아빠와 누나가 보여요. 마침내 아빠랑 누나랑 다시 만났어요. 휴! 이제 됐어요. 아빠는 나를 멀리서 보더니 찡긋 눈 사인을 해요.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무서운 화물칸에 혼자 있던 게 속상해 뒤늦게 "멍멍멍!"하고 짖어요. 하지만 사실은 아빠랑 누나를 무사히 다시 만나 너무 기뻐서 짖은 거였어요.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내 서류를 검토하고 '통과'라고 말해요.


아빠가 "조금만 더 참아, 또리야! 공항 밖으로 나가자마자 꺼내줄게." 하며 내가 타 있는 커넬을 카트에 싣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요. 누나가 기쁜 얼굴로 "또리야 이제 다 끝났어. 우리 얼른 엄마 만나러 가자!"하고 안심시켜 줘요.


생전 처음 맡아보는 새로운 냄새가 나요. 선선한 바람이 커넬 안으로 들어와요. 야호!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어요!


많은 사람들 사이로 뭔가 좋은 느낌이 와요. 앗! 갑자기 내 눈이 번쩍 뜨였어요.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 엄마가 보여요. 엄마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웃고 있어요.

"또리야~!"

 

엄마가 내 이름을 불러요. 커넬에서 해방된 나는 젖 먹던 온 힘을 다해 엄마에게 힘차게 달려요.


이야! 우리 가족이 드디어 다시 모였어요!

또리가 무사히 한국 우리 집에 도착했어요.


* 다음 호는 에필로그, ’ 생일날, 그리고 첫눈‘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온 퍼피> 연재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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