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난 '회피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 보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by 글적이다

내가 만약 무조건적인 사랑과 응원을 받았더라면,

회피형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불안하고 부정적인 생각들보다는

긍정적인 생각들로 채워졌을까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득한 이유를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서

혹은 응원을 받지 못했어서일까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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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대부분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아이였다.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속으로 혼자 생각하면서, 생각을 말할지 말지 결론을 내렸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대화를 좋아하지만, 부모와의 대화, 연인과의 대화, 친구와의 대화 다 잘하지만,

진지한 대화나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잘 못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당연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고 결론 내리는 사람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마음속의 진을 표현하기에 상대의 반응이 걱정되어

표현하기보다 숨기고 좋은 반응을 위한 선택을 한 적이 꽤 많다.

그럴 때마다 사실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된 불편함일까에 대해 생각을 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는 내 모든 것을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마음속의 진심을 표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그런 표현을 하면 부모님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거나, 혼이 나기도 했다.

그것들이 싫어서 표현하기보다 숨기는 것이 더 편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이 쌓이며 표현하는 자아보다 회피하는 자아가 생겼을 것이고

더 나아가 회피형의 사고방식이 형성된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 편한 선택이 '회피'였기에 그 시간들의 쌓임으로 지금의 '내'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인생을 살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꽤 불편한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동안 회피를 선택을 했다면, 이제는 회피가 아닌 마주 보는 선택을 하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하나씩 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다 보면, 언젠가 더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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