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잘하는 게 많았다.
초등학교 성적표는 6년 내내 올 수였고,
반장 부반장을 안 했던 학년이 없었다.
운동도 곧잘 해서 교내 육상부 높이 뛰기 선수도 했다.
학교 대표로 과학경시대회도 나가봤고,
미술 대회에 입상도 해봤다.
붓글씨도 잘 써서 입상해 보고,
바둑도 잘 뒀고,
노래도 잘했다.
할 줄 아는 게 많았다.
그건 내 자랑이자,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됐다.
무엇이든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진짜 좋아하는 걸 찾을 기회가 적었다.
'너 이거 잘하잖아.'라는 칭찬은
나를 새로운 길이 아닌 익숙한 길로 이끌었다.
"넌 이런 걸 해야 해."
"넌 이게 잘 어울려."
라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잘하는 것에만 시간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잘한다고 해서
그게 나의 꿈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남들이 기대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기회가 적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꿈을 상상하는 능력은 필요가 없게 되었고,
남의 기대가 나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고만고만한 기능을 모아 둔,
맥가이버 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지만,
특출 나게 높은 강점은 없는 그런 도구.
실제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잘하는 것들을 계속하는 게 아닌,
그저 싫지 않은 일을 계속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해보지 않으면, 좋아하는 게 뭔지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잘하는 걸 찾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걸 찾기 위해 인생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이것저것 시도 중이다.
잘하는 걸 좇던 시절보다 훨씬 불안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진짜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할 줄 아는 게 많던 아이가,
이제는 진짜로 하고 싶은 한 가지를 찾아가고 있다.
>> 한 줄 코멘트. 잘하는 걸 하는 건 돈을 버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돈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하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 싫지 않은 일을 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