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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일까?

by 라텔씨

호주 시드니에 살 때,

이따금씩 갔던 본다이 비치가 생각난다.

살면서 볼 수 없었던 크기의 파도들이

사람들을 덮쳤다.


내 키보다 높은 파도가 다가올 때,

사람들의 대처 방법은 두 가지였다.

파도 밑으로 잠수해서 파도를 피하거나,

잠시 해안으로 밀려나더라도

파도 위로 점프해서 파도를 타며 즐기는 사람들.




나는 두려워했다.

두려워서 물 밑으로만 들어갔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잠수만 했다.


그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더 깊어질까 봐 두려워 앞으로는 못 가고,

파도를 타려다 휩쓸리면

물을 먹거나 뒤로 많이 밀려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나 높은 파도의 재미는

파도에 엉키고, 휩쓸리고,

파도를 타고, 떠밀리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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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과 같다.

지금 위치한 곳에 머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일들은

외면하고 싶어 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산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재미는

그 파도에 휩쓸리는 데 있다.

때로는 이겨내고,

때로는 따라 흘러가며,

인생은 오락가락한다.

출렁출렁한다.



새로운 파도가 나를 물 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파도는 나를 높이 날아오르게

도와줄지도 모른다.


새로운 바람이

끊임없이 파도를 보내주고,

우리는 그 파도를 즐길 수 있다.

계속해서 타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잠수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늘 나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새로운 파도를 만들고 있다.

나는 그 파도를 타보려 한다.


파도가 무서워 잠수만 해서는

바다를 즐길 수 없다.


바다는 우리 인생이다.







>> 한 줄 코멘트. 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라고 부르기 뭐하다. 재미가 없다. 굴곡 없는 인생도 그렇다. 바다는 인생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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