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의 나와 이번의 나.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_시 <남편>의 일부분, 문정희 시인
이 정도 시간을 함께 보내봤고, 알아왔으면 충분하겠지 생각하고 결심한 결혼이었다.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할 줄 안다고 착각하던 나는, 연애 당시의 와이프만 경험하고 다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해서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상황에서 예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내에게 '갑자기 왜 그래?', '이번엔 왜 그래?'라는 반응을 보이고, 아내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치부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빚은 아내라는 작품에 대해서 고작 1~2년 동안 관찰한 시간(만나서 파악하는 온전한 시간은 몇 주 정도나 됐으려나?)뿐이었으면서, 다 안다고 착각했다.
부부 관계에서의 가장 큰 비극은 더 이상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 것이라는 생각,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이것도 모르겠어?라는 착각. 원래 이런 성격이었으니까 이번 일도 이렇게 생각하겠지?라는 오판.
얼마 전 아내와 1시간이 넘는 대화를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얼마 만에 길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을까.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아내가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는 거실 밖에 겹겹이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나는 이쪽 산을, 아내는 저쪽 산을 바라보며 함께 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가까운 산, 아내는 저 멀리 희미한 산을 가리키고 있던 것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색을 하는 시간을 통해 나를 찾아가곤 한다. 예전엔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나의 시야가 넓어진다. 관찰력이 좋아진다.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얼마 전에 오랫동안 묵은 일이 해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 오랫동안 아무 말도 안 했었는데, 그 일이 해결됐다고 표정이 바로 바뀐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내가 감정을 표정에 그렇게 잘 드러내는 사람인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어제의 아내와 오늘의 아내 역시 다르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변한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젊은 날에 깨달음을 얻은 성인군자들도 10년이면 많이 달라질 텐데, 일반인인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변할까?
예전의 경험으로 예상했던 반응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배우자에게 '이번엔 도대체 왜 그래?'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지난번과 이번은 상황도 다르지만, 주체도 다르다. 지난번의 나와 이번의 나는 다른 사람일 수 있음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지난번의 나와 이번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번의 나는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