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텔c Oct 24. 2024

[사색의 서, 20 ] 357번 고객님

이 글은 없었을 수도 있는 글

"357번 고객님, 음료 나왔습니다.

...

357번 고객님, 음료 나왔습니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 직후인 카페는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두 명의 바리스타들은 카운터와 커피머신을 앞뒤로 돌아보며 분주하게 음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행들과 대화를 하거나 손에 쥔 휴대폰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의 커피가 언제 나올지 궁금해하지 않고 있었다. 알아서 번호로 불러주겠거니 생각하는 건지 '성질이 급하다던' 한국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커피가 준비되는 근처에 '내 커피는 언제 나오려나.' 오매불망 기다리며 복잡한 곳이 되어 있을 법도 한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음료를 주문해 놓고 안쪽 공간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내 주문 번호는 358.


내 앞의 번호가 불려졌다.


"357번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준비됐습니다."


남자 바리스타가 허공에 읊조린다.

'그 크기로 소리가 들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


누구의 커피인지 모르겠다. 아무도 이곳을 쳐다보지 않는다. 안쪽까지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357번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조금 큰 목소리로 외친다. 짜증 난 표정이 순간 스쳐 지나간다. 그제야 안쪽의 남자 한 명이 보고 있던 휴대폰을 들고 나타나 커피를 받아 나간다.


짜증 난 표정을 비췄던 바리스타는 한숨을 쉰다.


누구의 잘못일까?

들릴락 말랑한 크기의 목소리로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말한 바리스타의 잘못일까?

아니면 커피를 주문해 놓고 다른 데 정신 팔고 있던 손님의 잘못일까?


어.쩌.면.

한 번에 전달될 리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바리스타가 애초에 두 번 외쳐야 함을 염두에 두고, 처음에 힘을 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바리스타가 처음부터 기다리는 고객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357번 고객님, 음료 나왔습니다.'라고 외쳤다면,

357번 고객이 음료가 나오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었더라면,

내가 그 순간 바리스타의 짜증 섞인 표정을 캐치하지 않았더라면,


이 글은 여기에 써지고 있지 않겠지.

독자들도 다른 글을 읽고 있겠지.


이 글을 어떤 바리스타가 읽는다면, 좀 더 크게 고객에게 말할지도 모르고,

이 글을 잠재적 고객들이 읽는다면, 바리스타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청을 보호해 주려고 관심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의미한 짜증의 빈도도 줄지 않을까?


상상에 상상이 꼬리를 문다.





이전 19화 [사색의 서, 19] 결혼식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