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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텔씨 Oct 28. 2024

[사색의 서, 22] 다독과 소독의 경계에서

제대로 읽는 법을 찾아라.

"무작위로 해치우려는 양적 독서의 바탕에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간당간당한 삶을 벗어나고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목적을 잃고 목록을 채우는 경쟁 독서에 심취합니다. 목적 잃은 독서는 당신의 의지와 노력을 바닥까지 소진시킨 후에야 걸음을 멈춰 세웁니다."


_<쓰려고 읽습니다>, 이정훈




"이렇게 살아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완성할 수 없어."


이 생각을 하고 난 후 제일 처음 한 것은 '독서'였다. 성인이 되고 흔한 소설책조차 거의 읽지 않았던 내가 책을 집어 들었다. 데이트 코스로 서점에 들른 김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관심이 없는 분야여도 그럴싸한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산 책은 내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채 책장에 그대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런 내게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점점 커져가던 불안감은 어떤 알고리즘에게 간택당했는지, 자기 계발 관련 영상으로 연결되었고, 어떤 자기 계발 채널이든 독서를 추천하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주문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책을 빨리 읽지도 못했고, 20여 년 만에 읽기 시작한 나는 글씨를 읽는 것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읽으려고 해도 책 한 권을 읽는데 4~5일이 걸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읽는 책은 내가 그동안 무척 바보같이 살아왔음을 증명해 주는 동시에, 책 속에 모든 답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틈나는 시간마다 읽었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차에도 항상 비치하면서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책과 함께였다. 그렇게 첫 해 50권 정도를 읽었을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빨리 보고 싶은 책들이 쌓여만 갔다. 시간은 한정적인데 아직 읽지 못한 책장의 책들은 쌓여만 갔다. 24년이 되면서 새해 목표로 책 100권을 읽기로 다짐했다. 연초에는 부지런히 읽으며 매달 10권 이상씩 읽어나갔다. 자기 계발, 글쓰기, 인터뷰,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문제는 그렇게 읽어나가다 보니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집어 들면 끝까지 읽으려고 하는 성격 때문에, 책 한 권에서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건질 게 있으면 그건 괜찮은 거라는 말 때문에, 잘 안 읽혀서 시간을 잡아먹는 그런 책도 억지로 끝까지 읽었다. 그런 시간이 독서를 노동으로 느껴지게도 했다.


책에 인생의 모든 정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 책만 읽으면 더 잘 살 수 있게 될 거라는 믿음. 책 속에 인생 공략법이 들어있다는 말과 인생을 쉽게 만들어주는 치트키라는 생각은 나에게 '다독'을 강요했다. 그리고 그 다독은 나름 성공적이지만 성공하지 못한 케이스가 되었다.


<책과 강연> 이정훈 대표님의 <쓰려고 읽습니다>를 폈다. 저자는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이라는 책에서 '다독'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서 읽기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본질은 오히려 '소독'을 통해야만 달성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98%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난들, 사색의 시간이 없는 단순한 읽기는 머릿속에 아무 내용이 남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오랜 시간,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이제는 많은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100권의 책 읽기라는 24년 목표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그 목표의 목적이 잘못되었단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런. 데.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만약 작년 내가 책을 처음 읽는 그때에 이정훈 작가님의 책을 읽고 '다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더라면? 책은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개념을 가지고 독서를 대하기 시작했다면 '소독'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No'.


내가 소독의 개념을 이해하고 어떤 기준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다독을 해봤기 때문이다. 다독을 하며 '어? 이게 맞을까?'라는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답에 근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독'도 맞고, '소독'도 맞다. 다독이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소독도 마찬가지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읽는 책들이 한 번에 이해가 안 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한 문장을 오래 음미하는 것보다, 다양한 문장을 접하고, 읽는 스킬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읽는 속도가 안 났다. 책의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글자를 눈으로 따라가면서 속으로 읽어나갔다. 속도도 느리고 한 번 읽어서는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나서부터는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 책 속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들이나 반복되는 단어들이 나의 뇌에 더 빠르게 인식되기 때문이고, 그 양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책, 전문용어로 가득한 책, 옛날 고전 문체로 된 내용들은 아직도 읽는 속도는 느리다. 아직 그 분야의 단어, 어휘들에 대한 내 뇌의 경험치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다독'이냐 '소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독'이 사색을 통한 성장이라는 '읽기'의 본질에 더 근접해 있지만, 일정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라면 '다독'의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독이냐 소독이냐를 물을 시간에 읽기의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 무조건 한 권의 책을 깊이 읽는 것, 둘 다 틀릴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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