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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텔c Oct 22. 2024

[사색의 서, 18] 90%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순간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돈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부모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특히 함께 있고 싶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밤낮으로 일하는 부모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비싼 물건을 사고 휴가를 좀 더 즐기기 위해 일에 빠져 지낸다면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훗날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인생의 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_<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필레머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90% 이상이 이미 흘러갔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게 되면, 부모님이 오래 건강하게 계시더라도, 자주 만난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은 물리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아이가 자랄수록,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 버린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살아간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값비싼 물건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것들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모아야 하고, 어떻게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돈, 재물, 부. 내 자녀들이 조금 더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부모들이 돈을 모으고, 투자를 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쓴다.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을까? 물론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중요한 걸까?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다. 내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계속 그랬다. 나에게 남은 건 가난이 가져온 결핍과, 부모님의 부재였다. 부모님은 밤낮없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셨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밤에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주말이면 나를 데리고 산과 계곡으로, 캠핑을 가시곤 했다. 허름한 민박집이라도 좋으니, 어디든 함께 가려 하셨다. 그게 부모님 나름대로 나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부모님을 필요로 했던 시간은 주말에 자연 속에서 놀던 그 순간들이 아니었다.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순간’에 부모님이 필요했다. 나는 언제나 부모님이 곁에 있어주길 원했다. 도움을 바라기보다는 그저 부모님이 내 옆에 있어주기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순간이 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인생에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90%의 시간이라는 학창 시절 중 90%가 지나가버린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2년 정도 일을 쉬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1년 동안 수입이 없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육아휴직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지만, 나 스스로 자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한 휴직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서 1년이란 시간이 엄청나게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그 시간이 회사에서의 승진이나 성과를 위한 것이라면, 그 의미는 더욱 미미할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고 있는 걸까?


물론, 내 자녀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게 되면 좋겠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한평생 동안 계속 풍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물질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통해 삶을 개척해 나갈 힘을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과 나의 직업.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 균형은 누가 정해주는 걸까? 혹시 나의 욕심이 한쪽에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내 욕심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당신의 욕심은 무엇을 원하나요? 아이들과의 시간인가요? 아니면 조금 더 많은 돈인가요?"


이 질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 같다.

‘Why not?’이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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