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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텔c Oct 21. 2024

[사색의 서, 17] 예정 부고

끝나지 않은 감정, 끝자락의 소식

"OO 아버지가 며칠 안 남으셨데. 병원에서 2~3일 남았다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OO이의 소식을 전했다.


OO는 이 단톡방에 없고, 고등학교 때 친구였다. 성인이 된 후 따로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는 아니다.


그때는 나름 친한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멀어졌다. 그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편을 가르는 걸 좋아했고, 별것 아닌 일로 나와 다른 친구들 사이를 이간질했다. 몇몇 친구들은 그 이간질에 넘어가서 나를 멀리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진심으로 대해준 친구들은 지금도 곁에 남아있다. 그때의 그를 생각하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망했다. 아버지는 삼촌 사업의 보증을 잘못 서서 집과 땅을 모두 처분했지만, 여전히 20억 가까운 빚이 남았다. 빚더미에 앉아 하루하루 버티던 나에게 그 친구가 한 짓은 아직도 용서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친구들의 경조사에서 그를 마주친 적이 있다. 만약 그때 그가 아무렇지 않게 아는 척을 했거나 인사를 건넸다면, 어리석고 철없던 시절의 실수라고 여기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고, 내 마음은 더 굳어졌다.


친구들은 그가 유치해서 그렇다고 나를 위로한다. 그럴 수도 있다. 유치함, 철없음, 뭐라고 부르든, 그 행동이 그런 단어들로 포장된다고 해서 괜찮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친구는 계속 그 일로 상처를 안고 가면 나만 손해라며, 털어버릴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가해자인 그는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그때를 생각하며 나만 괴로워하는 건 억울하지 않냐는 뜻이다.


마음으로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적어도 당장은 말이다.


그런 그 친구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약 이미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를 받았다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3일 남은 상황에서, 삶의 끝자락을 기다리는 그의 아버지와 그 시간을 지켜보는 그와 그의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 녀석은 나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텐데, 나는 들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는 소식에 여전히 그를 생각하게 되고, 그의 가족의 슬픔을 떠올린다. 사람의 뇌는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그 생각에 더 빠지기 쉽다고들 하는데, 아마 나도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그의 행동을 이야기하며 속풀이를 해본다. 내 안에 끙끙 앓으며 안고 있어 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입 밖으로 말을 꺼내 보지만, 변하는 건 없다.


그에게서 사과를 바라는 건 아니다. 나는 이미 그 사과를 받을 필요도, 용기도 없다. 지난 세월 동안 쌓인 원망을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게 지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조의금을 보낸다고 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와의 악연이 희미해질 수 있을까? 이렇게 갑자기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가 겪었던 그 시간을 계속 견뎌내야 할까? 그런 날들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삶도 필요한 거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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