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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텔씨 Oct 23. 2024

[사색의 서, 19] 결혼식 사회

정장 한 벌에 담긴 어리석음

"결혼식 사회 봐주면 정장 한 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다 못해 구두라도 한 켤레 해주는 게 도리지."




회사 동기의 결혼식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 중, 나와 동갑이면서 성격도 잘 맞는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다. 더 오랜 친구에게 부탁할 법도 한데, 회사 생활 2~3년을 함께 한 나에게 사회를 부탁한 게 조금 의아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농담을 주고받고,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그런 친구 사이였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오래되고 허름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방은 우리 둘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큼 좁았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 어린 시절 살던 집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눅눅하고 좁은 방의 기억이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그 친구가 나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보았던 걸까? 스스럼없이 자신을 보여줬다.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여전히 가난에 익숙한 집안, 연세 많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모습. 그래서 그 친구가 나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를 각별히 생각했던 것 같다. 외로웠던 걸까? 사람들과 친해 보였지만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성격이었다는 게 지금에서야 보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런 그가 나에게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다. 몇 년 되지 않은 인연인데 사회를 부탁하니 어리둥절했지만, 사회를 본 경험이 한 번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수락했다. 흔히 결혼식 사회를 보면 정장 한 벌이나 구두 한 켤레 정도는 받는다고 생각했던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나름 기대도 있었다. 수락하고 나서 ‘정장 한 벌 해주려나?’라는 생각도 했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고, 친구는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동기들과 모여 한잔 하는 자리에서 친구에게 물었다.


“정장 안 해줘?”
친구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선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속으로 ‘개념이 없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디 가서 말도 꺼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물질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예의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게 실제 예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의 집안 사정을 뻔히 알면서 내가 무례했다고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그때의 나를 질책한다.


몇 주 전, 지인 결혼식 두 곳에 다녀왔다. 두 결혼식 모두 사회는 전문 사회자가 맡았더라. 지인에게 사회를 부탁했을 때 답례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문 사회자 비용은 몇십만 원이 추가로 들겠지만, 추가적인 선물이나 돈으로 대신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선택한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일들이었지만, 당시 나는 꽤 고지식했다. 아마도 그 친구는 이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잊었을 가능성이 높다. 별거 아닌 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다. '그땐 그랬었지'라고 생각하며 괴로움 없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로 멀어져 1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언젠가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결혼식 사회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콩고물 기대하는 마음으로 네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내가 너무 철이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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