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대의 산물은 무엇이 될까?
"부귀와 명예가 도덕으로부터 온 것은,
숲 속의 꽃과 같아서 자연스레 무성히 커 나아가지만,
공적으로부터 온 것은
화분 속의 꽃과 같아서 변화에 따라 영향알 받고,
권력으로부터 온 것은
꽃병 속의 꽃과 같아 뿌리내리지 못하여 금세 시들어 버린다."
_채근담 59, 홍자성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시다. '가부장적'이라는 말은 아버지의 시대를 대변하는 말이다.
나는 그런 시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그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으로 소리 없는 악을 썼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과제와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큰 배낭에 옷과 속옷을 챙겨 나왔고, 보름에 하루만 집에 갔다. 군대에 다녀온 후에는 이번엔 해외로 나갔다. 비행기표 살 돈만 벌어서 무작정 떠났다. 1년을 계획했지만, 2년을 채우고 돌아왔다.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혐오했기 때문일까, 그런 분위기가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그곳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인 것은 그냥 타고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 이런 마음 때문에 내 자녀에게만큼은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인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많은 다짐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한 남자 사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저는 회사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내가 저를 거의 신경 쓰지 않아요. 집안에서 가장다운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밥도 잘 안 차려 주고 대화도 거의 없어서 서운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륜 스님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개인들도 변하고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연자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관념이 이해가 된다. 나의 아버지 세대에는 당연시 여겨지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케어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좋은 부부'의 모습이라고 여겨지던 그 시절.
그리고 나는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이미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전히 아버지 세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빠르게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나조차도 아버지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가부장적인 사람이 된 것은 성격 때문이 아닌, 그 시대의 모습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48년생 아버지. 올해 만으로 76세.
일제강점기 1910년부터 1945년. 무려 35년의 시간. 그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전부를 보낸 '할아버지'의 아들인 '아버지'. 일제강점기에 억압적이고, 권위의식적이고, 권력이 중요했던 시기를 보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버지. 그리고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베트남 전쟁, 사우디 외화벌이 등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아버지. 그 시대를 보냈던 아버지이기에 그렇게 가부장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너무나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수시로 흔들린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의 젊은 시절까지의 경험, 족히 5~60년은 되는 긴 시간으로 나의 어린 시절이 결정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주기가 너무나 짧아졌다. 인터넷,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의 발달, 전 세계의 인구가 쉽게 연결되는 글로벌 시대, 그리고 돈이 돈을 버는 금융 자본주의라는 이 시대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내 자녀들의 젊은 시절 또한 결정되리다.
서두의 <채근담>의 한 구절은 도덕적 기반 위에서 쌓은 부귀와 명예만이 진정으로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다.
갈 곳 잃은 나와 어떤 이들이 가야 할 방향이 여기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의 철학과 도덕적 근간을 단단히 뿌리내리는 것. 이 과정이 흔들림 없이 잘 자리 잡으면, 어떤 시대의 변화에도 괜찮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어려움에도 자녀들의 어린 시절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고, 나 또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답은 알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정답은 질문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