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시위를 강하게 당길수록 활이 더 힘차게 날아가듯, 언니와 아빠의 저항을 뿌리친 내 마음은 강렬하게 튀어나갔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은 곧고, 빠르게 날아갔다. 집에서는 우리 사이를 반대하는 언니와 아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우울하고 무표정하게 있었고, 그와 연락하고 사귀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22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확히 한 달.
한 달이 지났을 즈음, 아빠가 핸드폰을 뺏어갔다. 언니가 그와 나의 사이를 눈치채고 다시 아빠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언니의 친구들이기도 하기에 아마 누군가 우리 사이를 언니에게 말한 거 같았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22살의 여린 여자 성인은 울부짖었다. 언제나 막내딸을 애지중지하던 아빠에게 나의 울부짖음은 어린아이가 떼쓰는 정도로밖에 와닿지 않았나 보다. 나의 처절한 울음은 단번에 묵살당했고, 핸드폰은 전원이 꺼진 채 압수당했다.
"안 만날 테니까, 핸드폰 좀 줘. 갑자기 연락 끊어지면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뭐라고 설명이라도 해야 끝낼 거 아니야."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그에게 어떻게든 연락은 해야 했다.
"여보세요?"
"오빠..."
"그래..."
그는 눈치가 빨랐다. 아니, 이런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며 나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짐작했다는 듯한 말투였다.
"오빠.. 미안해..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
"..."
"한 동안 연락 못할 거 같아."
"... 사랑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짧은 통화를 마지막으로 그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언니와 아빠가 수시로 문자를 체크했고, 만약에 이번에도 연락하다 걸리면 앞으로 영원히 그와 연락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눈물을 삼키고 지낸 지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
퇴근하고 집 앞에 다 와가는데, 대문 앞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있었다. 그였다. 나는 당황했고, 어찌할 바 몰라하며 '여기 있으면 어떡해, 아빠 곧 퇴근하시는 시간이란 말이야.'라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서는 순간 골목 코너에서 아빠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아빠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용기를 내어 나타난 젊은 청년의 혈기를 압도했다.
그와 나는 아빠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빠의 말에 설득되어 헤어지게 되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정면 돌파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 더 철저하게 숨기기로 마음 먹었다.
몇 주 동안 정말 헤어진 것처럼 행동했다. 아빠의 마음을 확실히 안심시키고, 나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질 때쯤 그에게 다시 연락했다. 태연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의 마음 역시 변함이 없었다. 그가 우려하던 것은 내가 힘들까 봐, 내가 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곤란할까 봐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내 의지가 아닌 다른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더 강렬하게 불타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사랑은 그랬고, 그 온도를 주체할 수 없어서 집에 다시 들키고 핸드폰을 압수당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무리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취급을 받아도, 사회적으로는 출근을 해야 하는 성인이었다. 일 때문에 핸드폰을 계속 압수당할 수는 없었고, 그와 나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연애를 이어갔다.
어느 날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가 그를 바람둥이라고 말해서 나의 연애를 방해했던 그때 이후로, 꽤 오랜 시간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그래도 언니는 나에게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였다.
"너 그때 왜 그랬냐? 오빠 바람둥이 아니었잖아."
"뭐래, 걔 겁나 바람둥이거든? 여자한테 다 잘해줘."
"여자한테 친절하면 다 바람둥이야? 너한테도 친구니까 잘해줬을 텐데 왜 계속 친구 했냐?"
"다른 친한 친구들도 같이 엮여있으니까 그런 거지."
"웃기지 마, 맨날 너 술 마시면 집 앞까지 데려다 줄 때도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손절 친다고?"
"...."
"좋아했냐?"
이 말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나온 이 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였다. 얼굴이 씨뻘게져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모든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자리를 찾아갔다. 왜 바람둥이라고 모함을 했는지, 내 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언니가 나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아빠에게 고자질하며 도움을 요청했는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동안 마음 고생한 원인이 언니가 그를 좋아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원망과 하나뿐인 언니 역시 그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눈물과 한숨이 뒤섞여 나왔다. 어떡하면 좋지? 이 상황을 어떡하면 좋을까?
여전히 나를 간섭하고 통제하는 아빠와 원망 섞인 눈빛으로 나를 대하는 언니의 모습 속에서 나의 마음은 지쳐갔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언니가 잘못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라도 하나뿐인 동생이 내가 좋아하던 사람과 잘 되는 것을 마음 편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둘 다 그를 차지하지 못하는 게 길게 봤을 때 평화로운 결말일 거라 생각했겠지..
이런 복잡한 심정을 안고 하루하루 버텨내던 중, 연애하지 말고 일과 공부에 집중하라는 아빠의 잔소리에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
'오빠.. 이제 더 못하겠어. 우리 그만하자.'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 알았어.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 말대로 해볼게.'
'오빠 잘못 아니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근데 나 오빠 계속 생각나면 어떡하지?'
'생각나서 못 견딜 거 같으면 말해. 언제든 갈게.'
그도 반복된 이별과 만남 속 이런 결말을 예상했었을까? 아니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내가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우리는 그렇게 문자로 한참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헤어졌다. 한없이 행복에 겨워하던 우리는 마지막 통화에서까지 농담을 하며 웃고 있었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 앞에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말했다.
"나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