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투어를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현지인 가이드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처음으론 뱅밀리아 사원에 도착했다.
가이드와 함께 사원을 둘러보며,
부서진 사원이지만 이곳에 있는 작은 돌도, 돌에 있는 조각품 하나도 그가 생명을 불어넣으니, 다르게 보인다.
어제 앙코르와트를 가이드랑 함께 왔음 정말 좋았을 텐데..
투어를 하는 내내 그의 설명이 좋아 어제 앙코르와트를 혼자 본 것이 더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지금은 옛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이 훼손되었다.
만약 과거에 이 사원을 만들기 위해 생을 바친 사람들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허망할까..
하지만, 부서진 모습마저도 너무 아름다웠던 곳에서,
이 곳을 자신의 놀이터처럼 뛰어노는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맨발로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한 명의 타잔이 되어 사원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씨엠립은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관광 의존도가 높은 도시이다.
그래서 이곳의 아이들은 아시아인 관광객을 보면, "당고!! 당고!!"라고 외치곤 했는데, 일본어로 과자를 뜻한다고 했다.
사원을 뛰놀던 타잔도, 후에 길가에서 봤을 때는 우리를 보며 "당고!! 당고!!"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너무 씁쓸했다.
우리도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미군 부대 앞에서 아이들이 "헤이! 기브 미 초콜릿"이라고 들었던 게 생각났다.
인건비는 저렴한 반면 식품의 물자 대 부분이 수입품이라, 사탕 쿠키 등 식재료 비용이 비싸,
먹고 싶어도 마음 것 먹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은 해주고 싶어도 해주지 못해서 얼마나 미안하고 속상할까? 지금 이 시대의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게 참 감사하다.
사원을 둘러보고, 시장에서 개구리 다리를 맛봤다.
개구리 다리는 너무 맛있었지만, 차마 온갖 양념에 버무려진 몸통은 시도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투어를 하면서 먹을 과일을 사고, 다음 목적지인 깜퐁 플럭으로 향했다.
우리가 관광지로 방문한 이 곳은, 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아이들은 인어처럼 자유롭게 수영하고 물에 뛰어들어 놀고, 할머니나 엄마들은 관광객이 탄 작은 배의 노를 저었다.
내가 탄 작은 배의 노를 저어주시던 분은, 갓난아이를 젖을 물리며 일하는 어머니였다.
엄마는 위대하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 노력하고,
엄마 품 속에 안겨있던 아이는 젖을 먹고는 행복한 듯 까르르 미소를 보였다.
내가 본 캄보디아 사람들은 , 나라는 가난하지만 본인이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웃음이 많았고, 또 여유로워 보였고, 유럽처럼 소매치기가 많은 것 같지도 않았다.
돈으로 사람의 행복의 기준을 따질 수는 없지만,
평균 월급이 150만 원이 아닌 150불이고, 그것보다도 못 받는 사람도 많다는데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늘 웃으며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일상 속 작은 일들에도 기뻐하며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삶을 마주해야겠다.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큰 배로 갈아타고 함께 투어를 한 사람들과 석양을 보며,
펍 스트리트로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이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일행들은, 발 마사지를 받고 나는 여행기간 내내 슬리퍼를 신고 다녀 발에 각질에 심해 스크럽을 받았는데,
발바닥이 정말 더러워서 가능한 일행들과 멀리 앉아 받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먼저 마사지를 받던 옆에 앉은 오빠가 뭐 "뭐 , 받으세요.?"라고 묻는다,, 놀란 마음에 " 네??? "라고 답하니
" 해주는 사람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요.. "라는 말에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교차했다.
사실대로, 여행하는 내내 쪼리만 신고 다녀, 발이 거지처럼 더러워서 그런 것 같다,
풋 스크럽을 받으려고 내내 벼르고 있었는데 , 오늘이 그날이다.라고 상황을 말을 해줬더니 다들 빵 터져 버렸고, 나는 마사지사의 헌신과 봉사로 인해 아이의 발로 돌아가게 되었고.
나는 그에게 깊은 감동을 느끼며, 가격의 반 이상을 팁으로 줘도.. 그 고마움은 답 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