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하루는 질염에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
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생식기가 가려웠고,
챙겨 온 비상약 중 습진, 가려움 증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다.
숙소에 개미가 많이 있었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너무 가려워서 돌아다녀야지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쉬다 보니 배가 고팠다.
가려움증보다 식욕이 더 컸다.
몸이 아플 때는 밥이라도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하아. 한 입 먹자마자 숟가락이 멈춘다.
비주얼부터 맛없어 보였는데, 더 먹고 싶지 않은 맛이다.
이런 맛없는 걸 먹고 살찌고 돈 내야 한다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대충 먹고, 다시 가려움증이 돋아 숙소에 가서 쉬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또 나왔다.
또 블로그에서 본 유명한 맛집을 갔는데, 점심의 까르보나라보다는 낫지만 이것도 그저 그렇다.
그렇게 밥을 먹고 긁다가, 쉬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프놈 펜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처음 버스를 탔을 땐, 모두 외국인 여행객에 버스 자리도 여유로워서,
오늘의 이동은 편하겠군.. 안심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가는 정류장마다 멈춰 사람들을 태우는데
정원은 이미 초과가 된 지 오래고 2인 좌석에는 3명이 앉는 건 물론, 늦게 탄 사람들은 버스 복도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서 간다.
황당한 얼굴로 이미 사람들이 꽉 찬 버스에 사람이 더 탄 걸 보고 있는데,
복도 간이의자에 앉은 할머니가 내 무릎을 때리면서 캄보디아어로 뭐라 뭐라 말씀을 하신다.
옆에 앉은 아기 엄마가 통역을 해주는데,
"표정이 왜 그래, 웃어!"라는 말이었다.
캄보디아 사람 다운 말이라고 느꼈다.
장시간 이동에 간이의자에 앉아 가면 불편할 법 한데, 다들 웃으면서 싱글벙글 이야기를 하며 이동한다.
캄보디아에 왔으면 캄보디아의 법을 따르라고,
나도 할머니 말에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버스는 반복되는 고장으로, 가다가 멈추고 가다 멈추고를 계속 반복하였다.
버스에 내려서 고쳐지기를 기다리며, 도로에서 30분을 기다리는데 주변의 흙먼지가 모두 내 폐로 들어오는 것 같다.
오늘 안에만 도착해라, 라는 마음으로 가다 보니 결국 오늘 안에는 도착했고
긴 이동 끝에 도착한 프놈 펜은 수도라 그런지 씨엠립보다는 훨씬 더 도시 같았다.
호텔에 도착한 뒤 레스토랑에서 저녁으로 까르보나라를 먹은 뒤, 프놈펜은 비교적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해서 저녁에는 외출하지 않고 호텔에서 고된 몸 이동으로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다음 날 프놈 펜에 온 이유인, 킬링필드로 향했다.
킬링필드에 오면 지금의 캄보디아를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에서 불러 준, 툭툭을 타고 킬링필드에 와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그곳에서 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알 기 위해 노력했다.
오디오 가이드가 아니었으면, 훑어보고 나갔을 곳을 설명을 들으며 보니, 그들의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가 없을 만큼 가슴이 사무친다.
같은 민족인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다 수의 소중한 목숨이 말도 안 되게 희생이 되었고,
아이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다리를 잡힌 채 , 나무에 머리를 받혀 죽게 되었고,
손이 부드럽거나 안경을 썼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적으로 간주되어 죽음을 당했다.
일부의 말도 안 되는 신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않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했다.
킬링필드에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사람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캄보디아 사람들이 그 역사를 잊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다음에 방문했을 때는 좀 더 자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