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6
매년 봄마다 내가 좋아하는 고향 음식인 콩잎반찬들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먹는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반찬도 주문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30여 년 전 취직해서 수원에 올라왔을 때만 해도 콩잎은 부산에 내려가서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5~6시간 가야 도착하던 시절, 그나마도 자주 내려가지도 못했었다. 게다가 20대 때에는 혼자 살면서 밥도 안 해 먹어서 굳이 사가지고 수원으로 들고 올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서 콩잎반찬 생각이 가끔 났지만, 여전히 구하기 힘든 음식이었고 그즈음에는 사 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도 포기하고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리운 것이었다.
처음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콩잎반찬을 먹을 때는 너무 맛있어서 몇 날 며칠을 콩잎 하고만 밥을 먹었다. 남편과 아들들에게도 먹으라고 줬지만, 내심 깻잎 같겠지 짐작하고 태어나서 처음 콩잎을 먹어본 충청도 태생인 남편은 나뭇잎을 먹는 거 같다며 질색했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야채 반찬에 그다지 큰 맛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뭐 어쩔 수 없지, 나처럼 콩잎반찬을 좋아하는 남동생에게만 나눠주며 혼자만의 만찬을 즐긴다. 주변에 경상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거의 콩잎을 모르는 거 같다. 어떤 맛이냐며 궁금해하기도 하고 그런 걸 어떻게 먹냐는 반응도 있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깻잎보다 콩잎을 더 많이 먹었었다. 부산사람 빼고는 부산음식이 맛없는 걸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난 인정할 수 없다. 나에게 부산음식은 제일 맛있는 음식이니까.
생콩잎물김치는 초록색 여린 콩잎을 밀가루풀 국물에 담근 물김치로 하루이틀 익힌 후 먹으면 된다. 여린 잎이 억세어지면 물김치를 할 수가 없어서 봄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된장콩잎은 초록색 콩잎을 된장에 박아두었다가 먹는 반찬인데 입맛 없을 때 밥을 물에 말아서 하나씩 얹어먹으면 최고다. 양념콩잎은 가을에 단풍들 때 노랗게 물든 콩잎을 따서 소금물에 삭혀 만드는 거라고들 하는데 사실 만드는 걸 본 기억은 없고 시장에서 한 묶음씩 묶어 파는 노란색 삭힌 콩잎만 기억난다. 약간 쿰쿰한 향이 나고 초록이파리보다 더 질겨진 상태인데 거기다 김치처럼 고춧가루와 젓갈로 양념을 만들어 한 장씩 펴 바르면 완성이다. 바로 먹으면 되는데 역시나 밥도둑이다. 콩잎반찬을 생각하니 갑자기 입안에 침이 잔뜩 고인다.
그리운 고향음식을 떠올리면 항상 할머니가 생각난다. 음식솜씨가 좋으셨던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생콩잎물김치를 봄에 자주 담가주셨다. 나와 동생은 지금도 가끔 먹고 싶은 할머니표 음식들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식당이나 반찬가게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이제는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감사함과 아쉬운 마음이 크다. 내가 취직한 첫 해에 돌아가셔서 제대로 된 비싼 선물 하나 해드리지도 못했다. 딸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손녀딸인 나를 딸 대신이라고 늘 말씀하시고는 하셨다. 아직 살아계셨으면 손녀가 이렇게 잘 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고 할머니의 요리비법도 배우고 할 수 있을 텐데.
세상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반찬까지 주문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년에는 봄에 아예 생콩잎을 사가지고 할머니음식에 도전해볼까 싶다. 영 맛이 없으면 또 반찬가게에서 주문하면 될 일이다. 이제 내 나이가 52살, 할머니가 나를 처음 만났던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아들들이 내가 해준 밥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듯이, 할머니도 그러셨을걸 이제야 안다. 내리사랑이라더니 엄마가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마음이다. 내가 지금 할머니 음식을 그리워하듯이, 나중에 아이들은 나를 떠올리면서 어떤 엄마표 음식을 생각하게 될까? 아들들이 군대 휴가 때 딱히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이 없었던 걸로 봐서는 영 그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