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2
아침에 거실창을 여는 순간 아파트 정원의 벚꽃나무들이 모두 연분홍꽃을 활짝 피운 풍경을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꽃봉오리만 맺혀있었는데 하루사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만개했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활짝 핀 꽃 때문인지 남편이 점심을 먹다가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4월에 별 계획이 없으면 여행이나 가자는 남편의 말에 뚱이랑 같이 갈 데를 찾아봐야겠다는 것이 내 대답이었다. 이제 우리가 여행 갈 때는 무조건 뚱이와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7년 전 뚱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10분만 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다. 지금은 좀 익숙해져서 그나마 한두 시간은 멀미를 참고 잘 버틴다. 첫해 여름휴가 때 갔던 양평 애견 풀빌라에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이 닿지 않는 풀장에 빠진 이후로 안 그래도 물을 무서워하던 뚱이는 더더군다나 물 근처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큰아들이 입대한 해여서 뚱이는 논산훈련소도 갔었고, 운전병인 아들의 후반기교육이 끝나는 날에는 훈련소가 있는 가평으로 1박 2일 여행을 갔었다. 둘째 아들은 군복무부대가 고성 최전방이어서 첫 휴가 때 아들을 데리러 가면서 겸사겸사 뚱이와 같이 동해바다를 갔었다. 해마다 가던 여름휴가 가족여행은 뚱이가 더위에 너무 약한 것을 알고 나서는 가을즈음으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해운대, 안면도, 담양, 제부도, 개심사, 용문사 등등 가끔 우리끼리는 웬만한 사람보다 뚱이가 가 본 곳이 많은 것 같다고 농담을 한다.
몇 번의 여행 끝에 두 아들은 뚱이와 같이 어디 가자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뚱이는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같이 다니는 여행은 너무 신경 쓸 게 많아서 힘들다고 피한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보다 싶다. 우리 부부는 애들 어릴 때와 비교하면 강아지가 더 수월하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남편과 둘이서만 뚱이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 재작년에 둘 다 은퇴하고 나서는 제주도 여행을 뚱이와 함께 갔었다.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뚱이 때문에 우리는 수원에서 출발해서 목포에서 하룻밤 자고 완도항에서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었다. 아침에 한적한 바다를 끼고 딱 붙어있는 현무암돌담길을 따라 산책한 기억이 아직도 떠오른다. 뚱이와 같이 카누를 타기도 하고 제주여미지식물원도 구경했었다. 젊은 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뚱이가 우리에게 아이 대신인 셈이다.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강아지와 같이 갈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식당이나 백화점, 마트, 은행, 관공서, 숙소, 하다못해 절이나 산조차도 강아지 출입금지인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행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은 강아지 동반가능한 장소가 얼마나 많이 있냐이다. 7년 전 처음 뚱이와 여행하던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급격하게 강아지와 갈 수 있는 곳이 늘어났다. 제주도여행이 가능했던 이유도 배에 강아지동반이 가능했고 별도의 룸까지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요 몇 년 사이에 생긴 것이다. 식당이나 카페도 동반가능한 곳이 많아졌고, 애견숙소도 훨씬 많이 늘었다. 비발디파크 리조트도 코로나 때부터 애견동반객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13kg인 뚱이와 같이 비행기좌석을 타고 여행할 날도 멀지 않았다 싶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강아지를 만나게 되면 뚱이 생각이 난다. 여행한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 사진을 마구 찍어대곤 한다. 뚱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가 여행한 곳 중 산토리니나 보홀에서는 거의 대부분 개들을 목줄 없이 자유롭게 다니게 놓아둔다. 섬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고 생경하게 여겨졌다. 그곳에서는 사람과 개들이 아무렇지 않게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서로 더불어 같이 사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사람을 보고 짖지도 않고 슬슬 마실을 다니거나 어디 귀퉁이에 엎드려 있다. 그런 환경이 너무 부러웠다. 뚱이와 같이 나란히 평화롭게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우리 뚱이는 다음 생은 산토리니에서 태어나서 자유롭게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 늘 집에 갇혀있고 유일하게 나가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 산책뿐이다. 그조차도 목줄을 한채 끌려다녀야 하니 안쓰럽다. 물론 제일 먼저 사람이 행복해야 하겠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나는 사람도 강아지도 모두 행복한 곳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날씨가 따뜻하고 꽃도 많이 피는 4월 뚱이와 같이 어디로 여행을 떠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