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들이 휘날리고, 가을들녘을 떠올리다 (3)

2002년에서 2001년으로 다시 90년대로

by 세니seny

가을의 기억 3. 중학생 때 : 담임 선생님께 받은 은행잎 책갈피 선물


(이 글을 쓴 시점은 2002년이다)


작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선도부 간부 수련회를 갔었다. 난 그 당시 선도부였기에 그 수련회에 갔었다. 우리 학교 선도부가 간 곳은 서당골이라는 수련원이었다.


그곳에서 자연도 느끼고 저녁 때는 산 위쪽으로 올라가서 하늘에 쫘악- 펼쳐져 있는 은하수(우리 고유어로는 ‘미리내’라고 한다는데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도 보았다. 내가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여섯 살 때쯤, 가족과 함께 군산 앞의 선유도라는 섬으로 놀러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여섯 살 땐 하늘에 하도 별이 많길래 세어보다가 사십몇 개쯤 되니 도저히 셀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던 기억도 있다. 그 은하수를 보았던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오래 간직될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거기에 같이 가셨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수련회가 끝나고 며칠 뒤에 나를 부르시고는 손에 뭘 하나 쥐어주셨다. 코팅이 된 은행잎에는 ‘2001 가을, 달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달님은 우리 담임 선생님의 별명이었다.


그 은행잎은 우리가 선도부 수련회에 갔던 장소 즉 산에서 주워 오신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도 그것을 가지고 있는데 볼 때마다 아련함이 느껴진다. 별명이 달님이었단 울 담임 선생님은 잘 지내고 계실까?

가을의 기억 4. 초등학생 때 : 추석에 기차 타고 부모님 고향에 내려가던 길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멀리 사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 기차를 타고 갔었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외할아버지 댁’ 보다는 ‘외할머니 댁’이 부르기에 더 친숙한 것 같다. 외할머니가 과자를 많이 사주셔서 그런가? 아무튼 1년에 몇 번 있는 큰 명절인 추석과 설 때는 꼭 시골로 내려갔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 추석 때인가 나, 엄마, 내 동생이 원래 두 명이 앉는 자리에 셋이서 같이 앉았다. 표를 그렇게 끊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고 몸집이 작은 나와 내 동생이 어른 둘이 앉을 법한 자리에 앉아있으면 어떤 노인 분들이 오셔 가지고 우리를 자기 무릎에 앉히시겠다면서 자리에 좀 앉겠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런 건 좀 불편했다. 그래서 그런 이후부터는 두 자리를 끊어서 나, 엄마, 내 동생 아예 셋이 같이 앉았다.

그렇게 셋이 앉아서 가고 있는데 그때는 추석이었으니 가을이었겠지. 기차가 지나가는 곳은 시골이나 변두리 쪽이다. 차창 너머의 옛 풍경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기차여행을 즐겼던 기억이 있다. 소가 사는 외양간도 보이고, 농부의 모습들도 보인다. 무너져 가는 초가집도 보이기도 하고. 그때는 그런 것들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지금은 너무 무뎌진 걸지도.

그때 본 것은 아마도 가을 논이었을 것이다. 가을 논. 요즘 어린아이들은 도시에만 살고 심지어 할머니 댁도 서울에 있어서 기차 한 번 제대로 타보지 못 한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 가을 논을 볼 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 논밭이 쫘악 펼쳐진 가을 논에 바람이 쉥- 하고 부는데 그 바람이 논에 심어져 있던 쌀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걸 보고 보통 ‘금빛 물결이 출렁거린다’라고 표현한다고 나에게 말해 주셨다. 금빛 물결. 엄마의 말씀을 듣고 나서 자세히 보니 정말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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