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입술에 노래를>을 보고 (4)

by 세니seny

그렇게 합창대회 당일이 되었다. 원래 출산휴가 간 선생님이 무대를 보러 오기로 했는데 계속 보이질 않는다. 무대 오르기 전에 리허설 연습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그 전화를 받고 돌아온 카시와기 선생님의 표정이 좋질 않다. 다들 무슨 일이냐고, 특히 나즈나가 숨기지 말라고 말한다.


하는 수 없이 선생님이 아기를 낳으러 갔는데 조금 위독하다고 한다라고 하니 다들 웅성거리며 연습 대열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카시와기 선생님도 이제는 달라졌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아기가 건강하게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가 여기서 흐트러져선 안된다고.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나니 어느새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병원침대에 누워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선생님에게 휴대폰으로나마 라이브로 아이들의 합창이, 노랫소리가 전달된다. 뻔한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기분이 뭔지는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우리 집 강아지 똘이가 하늘나라로 간 다음날, 면접에 가야만 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2차 면접 즉 최종면접 날이었다. 최종면접 자리까지는 올라갔지만 만약 합격한다고 해도 집에서도 거리가 있었고 그쪽은 빠른 입사를 원했기에 나와는 조건이 맞지 않아서 면접을 안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꾸역꾸역 면접에 갔다.


다른 가족들이 똘이를 마지막으로 보내러 가는 길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것이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마음을 다잡고 면접을 잘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면접 보고 나와서 다음 면접자에게 '면접 잘 보세요'라는 멘트까지도 날렸다.


그리고 회사에 조금 늦게 출근했으며 눈물이 차오를 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울고 눈물을 닦고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아이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합창대회가 끝났다. 역시나 선생님이 예언했던 대로 아이들은 상을 받거나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사히 무대를 끝냈다는 기분에 모두들 신나 있었다. 사토루의 가족도 모두 공연을 보러 오긴 했는데 자폐인 형은 아무래도 통제가 안되니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아버지와 함께 로비에 있고 어머니만 공연장에서 공연을 봤다.


그러니까 형은 사실 공연을, 노래를 듣지 못한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런 데에 올 가족이 없는 나즈나는(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이 드셔서 못 오시고) 주위를 둘러보다 사토루네 가족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토루의 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럼 사토루가 노래하는 건 못 보셨어요?" 그리고 예의 '그것'을 실행한다.


예의 "그것"이란 바로 매년 초 합창부원을 받기 위해 학교 로비에서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건물 로비에서 나즈나와 사토루가 노래를 시작하자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 '그거?' 하며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하나둘 모이다가 로비에 있는 다른 학교 합창단원들도 가세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 시작 부분에서도 합창단원을 모집하기 위해 이렇게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수미쌍관이다. 아버지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당황해하면서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형은 기뻐한다. 형 1명을 위해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된다.


사실 사토루의 형에게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형이 기분 좋을 때 뱃고동 소리를 내곤 하는데 알고 보니 나즈나의 엄마가 교회 피아노에서 나즈나에게 '도'를 치면서 전진, 전진하며 위로해 줄 때 그 교회 안에 그도 있었던 거다. 나즈나와 함께 구원받았다고 해야 하나 위로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때부터 형이 가장 기분 좋아하는 소리가 바로 그 뱃고동 소리가 된 것이었다.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고 물건을 줄 세우는데 병적으로 집착하지만 사토루를 생각하는 속 깊은 형이었다.




평범한 영화다. 평범한 영화인데 내가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훌쩍거린 이유는 어제 병원에 다녀와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1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픈, 세상을 떠난 우리 집 강아지 생각이 나서 일까. 그래서 괜한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도'를 들을 때면 나도 뱃고동 소리와 함께 주저앉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내 마음속의 울림 하나 정도는 생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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