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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un 04. 2022

이직을 결심하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증명사진을 찍어보자

     나는 사진을 더럽게 못 찍는다. 아니, 사진에 '잘 못 찍힌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까? 요즘은 다들 셀카도 잘 찍고 사진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데 사진에 찍힌 나는 꼭 눈을 감거나 썩소를 짓고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자세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거의 모든 사진이 목과 어깨가 나란하지 않아 고개가 비뚤어져 보이게 나온다. 그래서 사진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직을 하려면 이력서에 사진을 붙여야 하니 증명사진이 필요했다.


     가장 최근에 찍은 증명사진은 지금 회사에 입사할 당시 구직 활동할 때 찍은 것으로, 벌써 5년 이상이 지난 사진이다. 그동안 시술이나 성형을 한 적은 없지만 5년 사이 얼굴 중 변한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눈'이다. 나는 원래 속쌍꺼풀만 있었는데 가끔 자고 일어나면 쌍꺼풀이 생기긴 했었다. 하지만 눈을 비비거나 세수를 하면 없어지는 정도로 생겼다가 금방 없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3년 전의 어느 날 아침, 쌍꺼풀이 생기더니 이제는 아예 자리를 잡았다. 나이가 들면 눈꺼풀이 얇아져서 없던 쌍꺼풀도 생긴다던데, 30대 중반인데 벌써 노화의 증거로 쌍꺼풀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아무튼 그 외에는 변한 게 없지만 업데이트를 위해 증명사진을 새로 찍기로 했다.


     원래 예전부터 취업용 증명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사진관이 있었는데 이사를 오다 보니 그곳과 너무 멀어졌다. 그래서 회사 근처를 검색해 보니 마침 취업용 증명사진과 여권용 사진을 함께 이벤트로 찍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화장은 평소에 하던 대로 가볍게 하면 되는데 머리가 문제였다. 파마를 안 한 생머리라 미용실에 들러 드라이라도 하고 가기로 했다. 회사 근처의 브랜드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저렴한 미용실도 아니었는데 평일 이 시간에 머리를 할 정도로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그나저나 샴푸에 드라이만 했는데도 3만 원 돈이 나온다. 그래도 머리를 다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진 스튜디오는 미용실에서 멀지 않아서 슬슬 걸어간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진관도 한산하다. 안쪽에 들어가서 준비해 온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쟈켓을 입고 촬영을 시작한다. 사진사 아저씨는 한참도 더 전에 성인이 된 나를 마치 돌잡이 사진을 찍는 아기들 다루듯 둥가 둥가 하며 능숙하게 촬영을 진행한다.


자자,
좀 더 웃으시고,
자, 거기서 30% 웃어봐요~
자, 이제는 50% 정도로 웃어보세요~
마지막으로 70% 정도로 크게 웃어봐요~

마음속에 행복한 일도 떠올리고~

옳지, 고개를 좀 더 숙이고 왼쪽으로 돌리고 약간 갸우뚱하고~

눈에 힘도 주고 자, 그렇죠~

다시 한번 가볼게요~


    이런 멘트가 반복되었다. 병원도 그렇고 이런 데서는 전문가가 하라는 대로 말을 잘 들어야 빨리 끝나고 결과물이 좋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원래도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따라 하려고 하는 나는 사진사 아저씨의 멘트를 들으며 멘트대로 해보려고 애를 썼다.


      설마 증명사진 찍을 때 들으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마음속에 행복한 일을 떠올리라'는 말을 듣고 과연 최근에 마음속에 행복한 일이 뭐가 있었나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은 찍어야 하니까 웃어야 했고 사진에 예쁘게 찍힐 수 있을 정도로만 웃는 미묘한 경계선을 찾아 미소를 지었다.


     취업용 증명사진 촬영 완료 후 여권용 사진을 촬영했다. 여권사진은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눈썹이 다 보여야 해서 앞머리를 얼굴 양 옆으로 거의 넘기다시피 해서 찍었다. 다 찍고 나서 사진을 확인하니 앞머리가 없는 여권사진이 훨씬 더 잘 나온 듯했다. 중학교 때부터 길러온 앞머리를 없애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날 이후로 한참 동안 앞머리를 길러 옆으로 넘기면서 앞머리를 없애버렸다.


     촬영이 끝나고 다른 직원분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랐다. 증명사진을 양쪽에 두 개 띄워놓고 둘 중에 맘에 안 드는 걸 지워버리는 식으로 선택지를 축소시켜 나갔다. 내 사진을 가지고 스스로 이상형 월드컵을 하고 있는 거 같아 혼자 속으로 큭큭댔다. 사람이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건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분도 이상하다 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 자꾸 눈에 힘을 주라는데 이게 미소를 지으면 눈이 찌그러드니까 힘을 주기가 어려웠다. 눈 크게 뜨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없던 쌍꺼풀이 생겨서 눈매가 아주 조금 또렷해진 건데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진짜로 내 눈에는 힘이 없었다. 눈이 풀려 보였다. 나는 평소에 눈 화장을 거의 안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사진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아이라인을 그리려고 아이라이너를 찾았다.


     그런데 그동안 아이라이너를 안 썼더니 안에 내용물이 다 말라비틀어져서 아이라이너를 쓸 수 없었다. 아이라인이 없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열정이 없는 게 나도 모르게 눈으로 다 드러난 걸까? 배우들은 눈으로도 연기를 한다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직원분이 포토샵으로 아이라인을 그려주었다.


토익 시험도 봤고
  증명사진도 찍었다.
이제는,
   이력서를 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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