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없는 시월의 주말엔 일정을 만들어보자
2017년 10월 어느 가을날의 일기.
가을방학의 노래가사 마냥 '약속 없는 시월의 주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주는 마지막 시월의 주말이기도 해서 일부러 스케줄을 만들었다. 원래는 짧게 국내여행을 다녀올까 했지만 이제는 혼자 여행 다니는 것에도 신물이 나서 그런지 별로 신나지 않았다.
그럼 서울 시내에서 뭔가 여행 비스끄무리한 걸 해봐야겠다 싶어 고민하다 남산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또 혼자 가기는 뭐해서 남산을 같이 올라가는 프로그램은 없나, 하고 찾아봤지만 없었다. (엉엉) 하는 수 없이 그런 비슷한 거라도 없나 찾아보다가 북촌마을 걷기 프로그램이 있길래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2년 전인가 가봤던 집밥 모임에서 발견한 새로운 모임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 토요일 날씨는 참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씻고 밥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집을 나섰다. 안국역에는 정확히 11시에 도착했고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가이드 분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검증된 가이드님이었는데 삼청동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런데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셔서 살짝 당황했다.
아무튼 북촌마을투어는 땅바닥에 있는 지도를 보며 시작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쯤에 공연이나 영화 볼 게 있어서 분명 이 동네에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 행사가 뭔지는 도저히 기억이 안 났다. (아무래도 공연 같은데)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친구들과 한 번 정도 온 적이 있던 거 같은데 그건 꽤 오래전 일이었다. (누구랑 왔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남) 아무튼 큰길을 지나 바로 골목길로 들어갔다.
단지 골목길로만 들어갔을 뿐인데도 꽤 조용했고 보이는 풍경이 달랐다. '별궁'이라는 단어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식당 이름으로 남아있는 게 참 신기했다. 오늘 투어를 돌면서 느낀 건데 특히 그 서울 중심부 지역은 조선시대나 과거 역사를 알면 좀 더 재밌게, 흥미롭게 산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풍문여고, 덕성여고를 지나 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사거리로 들어섰다. 거기에서 다시 사람들이 덜 붐비는 쪽으로 이동했는데 꽤나 큰 한옥집이 있었다. (담벼락이 매우 길었음) 알고 보니 거기가 윤보선 대통령 가옥이었고 지금도 실제 후손이 살고 있다고 했다. 윤보선 대통령이 누구를 만나는지 감시하기 위해 건너편에 한옥을 들여다보려고 지은 양옥 건물-겉은 다 새로 했지만-이 있단 설명도 들었다. 그러자 다시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담벼락을 따라 커다란 나무를 심었고 (현재는 다 베어 버려서 없음) 반대파들은 다시 그 건물에다 층을 더 올렸다고 한다.
다시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현대적 느낌이 나는 박물관 같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건물 앞에는 꽤 큰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400년가량 된 향나무라고 한다. 그 박물관을 지으면서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하는데 그게 건물과 꽤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박물관에서는 마침 Ed Shereen의 <Shape of you>를 꽤 큰 볼륨으로 틀어놓고 있었다. 노래 속의 뚱, 딱, 뚱, 딱 하는 현대적인 전자 음악과 400년 된 나무와의 조화가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