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여름휴가 : 온통 책과 함께
(2021년 9월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 지겹다. 이런 빡빡한 일상에서 나 하나 빠져나갈 구멍은 꼭 필요하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되뇌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스크를 낀 채로 여름이 다가왔다. 우리는 언제쯤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아니, 벗을 수 있기는 한 걸까? 다들 여름휴가를 가는데 나는 아직 휴가를 쓰지 않았다. 나는 원래도 무더운 한여름엔 오히려 사무실로 출근했고 보통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에 길게 휴가를 낸 뒤 유럽 여행을 가곤 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해외에 가지 못하는데 길게 휴가를 내서 뭐하나, 그냥 휴가를 쪼개서 쓸까 하다가 문득 생각났다.
우리 회사에선 올해부터 5년 근속자에게도 상을 준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내가 올해 딱 입사 5년 차여서 나를 비롯한 몇 명이 처음으로 그 혜택을 보게 되었다. 비록 상금은 없지만 상패와 부상으로 유급휴가 3일을 준다. 그래, 휴가를 써야겠다. 예년처럼 해외에 가지 않더라도 포상휴가에다 내 휴가를 붙여서 휴가를 길게 내야겠어. 일상을 한번 끊어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쉬었다고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추석 연휴를 바로 앞둔 일주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5일간 휴가를 냈다. 해외 대신 국내여행이라도 길게 가볼까 했는데 아직 고속도로에 혼자서 차를 끌고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근교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그럼 도대체 어딜 가지?
그러 던 어느 날, 근무시간에 인터넷에서 잠깐 노닥거리다 누군가가 올린 파주의 북카페 ‘지혜의 숲’ 사진을 봤다. 이곳은 전에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는 곳이었다. 그때도 사진이 꽤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파주’하면 또 출판도시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파주 출판단지에 대해 찾아보니 출판단지 내에는 출판사들도 모여있고 지혜의 숲뿐만 아니라 다른 북카페들도 많다고 했다.
이번에 갈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사진만 보고 다음에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고 결국은 안 갈 것임을 안다. 이렇게 이번 여름휴가 여행지 ‘파주’는 근무시간에 살짝 농땡이를 치다 누군가가 올려놓은 글을 보고 정하게 되었다. 운명이다.
그렇게 3박 4일간의 파주 여행을 계획했다. 북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또 브런치에 올릴 글들을-가끔 하트가 눌리는, 일상에 크게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정도의 잡문-쓰기 위해서 간다. 굳이 따져보면 브런치는 나의 공개적인 일기 같은 느낌이다. 욕설과 감정 변화가 오가며 주위 사람들의 실명이 등장하고 문장의 연결고리가 일정하지 않은,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일기에서 그래도 인사이트를 끄집어내고 좀 더 읽기 좋게 다듬은 깔끔한 일기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쨌든 나름의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읽고 쓰는 것만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마침 출판단지 근처에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마음에 쏙 드는 에어비앤비 숙소가 있어서 예약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휴가 5일 차엔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도서관도 가보지 않고서 감히 그런 생각을 했다는 생각에 꼭 가봐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도서관 위치를 확인하다 보니 예전에 친구들과 한번 가봤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때 같이 갔던 친구들 중에 이 에피소드에 나왔던 친구 P(관련 글 : https://brunch.co.kr/@lifewanderer/49)가 있기에 그곳에 갔었던 기억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된 건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혼자서 제대로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다. 그때는 단순히 친구들과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갔었다고 하면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사서라는, 나의 작은 꿈을 돌본다는 생각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휴가 6일 차에는 강남역 교보문고에 가서 김영하 북클럽 9월 선정도서를 읽어야지. 미안합니다, 작가님. 저는 거의 모든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는데 책이 없더라고요? 8월 라방 끝나자마자 우리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어야 했는데… 5분 사이에 다시 들어가니 예약이 3명으로 늘어나 있어서 예약을 못했지 뭐예요. 저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해서 웬만하면 더 이상 책을 사지 않으니 서점에서 좀 읽을게요. 하하.
이렇게 이번 휴가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활동은 모두 ‘책’을 둘러싸고 기획되었다. 출판사들이 모여있고 북카페가 즐비한 파주 출판단지 방문, 국립중앙도서관 방문에 강남 교보문고 탐방까지. 행복한 휴가가 될 것 같다.
본격적인 북캉스는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