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니seny Jul 17. 2021

서른 살 먹고 미팅하기 (상)

생애 첫 미팅 그러나 멤버 구성부터 삐그덕 대다

(2015년 시점에 쓰인 글입니다)



     아직 만으로는 20대지만 한국 나이로는 올해 서른 살이 되면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20대의 마지막이었던 지난해엔 아홉수여서 그런지 유난히 힘들었고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해 초조하고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는 한 해였다. 


     1월엔 연 결산을 마치고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 다녔고 첫 번째로 다녔던 회사에 퇴사 후 처음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다니는 회사의 신년 킥오프로 강릉에 가서 잠시나마 밤바다를 보았고 뭔지 모를 불안감에 속이 불편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 친구 P에게 미팅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P는 29살이 되자 결혼을 빨리 해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열심히 소모임도 나가고 소개팅도 했다. 그러다 한 1년 정도 꾸준히 나가던 모임에서 알게 된, 대기업에 다니는 오빠가 있는데 그분의 회사 사람들과 미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3:3 미팅을 하기로 해서 여자 측 주선자인 P는 본인 외에 두 명을 더 모집해야 했다. 


     P와 내가 속한 친구 그룹에는 나 말고도 솔로인 친구 L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솔로인 나에게 미팅을 제안했으니 똑같이 L에게도 미팅을 제안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P는 내가 참여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는 L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P하고도 친하면서 솔로인 L에게 왜 이 미팅의 참석을 제안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그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상대방이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춰야 한다고 하면서 L은 외모적으로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니 부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같은 친구 그룹에 있는 다른 친구인 고등학교 교사 J도 솔로니 그녀는 어떻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P가 하는 말.



야, 너는 교사가 인기 좋은 거 모르냐?
걔 나오면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져.



     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친구들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분류할 만큼 이 미팅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P는 평소에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같은 그룹에 있는 또 다른 친구인 S에게도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S는 얼마 전까지 솔로였지만 남자친구가 생긴 지 이제 막 한 달쯤 된, 따끈따끈한 상태였다. 나는 S와도 꽤 친해서 그녀가 어떻게 해서 그 남자친구와 사귀게 되었으며 아직 한 달 밖에 되진 않았지만 둘은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S는 이때의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 


      P는 같은 그룹 내에서 평소에 자주 연락을 하지 않던 S한테도 연락을 할 만큼 이 미팅을 성사시켜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S에게 듣자 하니 이제 사귄 지 한 달이면 남자친구 생긴 지 얼마 안 된 거 아니냐면서, 미팅에 나와서 머릿수만 좀 채워주면 안 되겠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같은 그룹에 있는 친구들로는 머릿수 채우기가 어려워졌다. 어떻게든 빈자리 한 명을 채워야 미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여자 측 주선자이자 이 미팅에 사활을 걸고 있는 P는 백방으로 뛰어 참석할 만한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서른 살이 된 대부분의 친구들이 짝이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알아보다가 결국 미팅 날짜를 바꿔서까지 멀리 자신의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참여시켰다.


    나는 이 미팅 멤버를 구성하는 지점에서부터 그녀가 서서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목표의식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미팅에 낀 나는 좋아해야 하는 것인가? 아주 예쁘지도, 아주 못 생기지도 않았으며 적당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서 뽑힌 걸까? P와 체격도 비슷한 데다 본인보다 내가 아주 뛰어나지도 않고 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간택된 것은 아닐까? 


   게다가 나는 미팅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소개팅도 불편해하는 나인데 미팅이라고 오죽할까. 만에 하나 그 미팅에서 P가 잘 안 되고 내가 잘 되기라도 한다면 친구의 원망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위해 참석만 하는 셈 치기로 했다.



'서른 살 먹고 미팅하기 (하)' 편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