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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에 얽힌 이야기

노잼 도시 대전에 내 닉네임과 같은 카페가 있다?

by 세니seny

나는 브런치에서 '니나'라는 필명을 쓰지만(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에서 따왔다) 필명을 정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원래는 인터넷에서 각종 사이트나 카페 등에 가입할 때 자주 쓰는 닉네임이 있었다. 브런치에 가입했을 때도 당연히 그걸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엄마에게 그 닉네임이 노출되었다.


엄마가 브런치까지 찾아 들어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다음 메인화면에 노출되었다가 엄마가 알아차릴 수도 있기에(사실 한 번쯤은 다음 메인화면에 노출되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닉네임을 바꾸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름을 고민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심 끝에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내가 자주 쓴다는 그 닉네임은 소설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평범한 단어의 조합인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내일로 여행에 한창 빠져있던 2012년의 어느 날, 기차여행 커뮤니티에서 대전에 있는 카페라며 내 닉네임과 똑같은 카페 소개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댓글로 내 닉네임과 카페 이름이 똑같아서 신기하다고 댓글을 남겼고, 글을 쓰신 분도 신기하다면서 나중에 놀러 오면 커피라도 공짜로 대접하겠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이번에 대전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고맙다며 댓글로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당시 내일로 여행을 통해 국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던 참이었는데 내일로 여행의 나이 제한에 걸려 마지막 내일로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보통 내일로 여행을 한다고 하면 큰 도시도 가지만 대부분 기차가 닿는 시골이나 좀 더 작은 마을로 여행을 많이 간다.


그런데 그때 나의 여행 콘셉트는 '낯설게 하기 : 낯선 도시에서 낯선 영화보기(부제 : 낯선 도시의 독립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 보기)'였다. 내 취향의 영화들은 대부분 독립 영화관에서 많이 상영해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독립 영화관이 있는 지역을 찾았다.


지방 소도시에도 독립영화관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많은 선택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광역시 같은 큰 규모의 도시에 가야 독립 영화관이 여러 개 있어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짜다 보니 대전 - 광주 - 부산 - 강릉을 도는, 내일로 여행 치고는 희한하게 대도시만을 여행하는 일정이 되었다.


대전은 여행 첫째 날 방문하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은 각 도시의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씩 보는 게 주목적이다 보니 한 도시에 하루 정도 머물거나 영화만 보고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한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다행히 대전의 그 카페는 극장 근처에 있었다.


대전에 도착해 카페를 찾아갔다. 두근두근. 작은 카페였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이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커다란 짐을 메고 오니 여행 오신 거냐, 하며 이것저것 말도 걸어 주고 대전에 대한 정보도 알려줬지만 막상 내가 커뮤니티에 댓글 남겼던 그 사람이에요,라고는 말을 못 했다.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못하고 조용히 음료수만 마시고 다음 일정이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갔는데 그래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가는 게 계속 아쉬웠다. 기차 여행자에게는 5%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그 얘길 하다가 말을 꺼냈다.


카페에서 찍은 사진 @ 대전 / 2012.07



사실,
제가 그 커뮤니티에 댓글 남겼던
그 사람이에요.



그분들이 당연히 기억한다면서 반갑다고 말을 걸어주었다. 알고 보니 나와 카페 남녀 주인장은 모두 동갑이었다. 그 둘은 연인관계인데 사업도 같이 하는 듯했다. 나는 계산만 하고 조용히 나가려고 했던 건데 이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대전에 사시는 게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오신 거냐, 여행 오신 거냐, 대전에서는 뭐뭐 하실 거냐 등등.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인데 나에게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개념에 대해 말해주었고, 내가 친구들에게 백날 말해도 모르는 밴드 이름을 말해도 전부 다 알고 있어서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분들도 카페 이름을 짓게 된 게 나처럼 그 소설 제목을 보고 따와서 지은 것이라 했다. 신기했다. 서로 같은 곳에서 힌트를 얻어 한쪽은 카페를 짓고, 한 명은 닉네임으로 그걸 쓰고 있으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남자 주인분이 축구를 좋아해서 지역 축구팀 응원단도 조직해서 응원도 가고 여자 주인분은 글도 쓰고 모임도 하고 그런 공간이었던 것 같다. (오래돼서 기억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카페라고 해서 딱 커피만 팔고 끝인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계산을 다 하고 나가려다 말고 다시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여자분께서 나중에 먹으라면서 빵을 하나 준비해주셨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빵을 받아 들고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 뒤로 대전에 갔을 때 한, 두 번 정도 카페에 더 방문했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보니 그 둘은 결혼을 한 것 같았다. 한참을 잊고 지내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려나? 아직도 카페를 하려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개인이 하는 카페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두근거리며 검색창에 대전 OO카페를 검색했다. 다행이다. 같은 위치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카페는 그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제는 카페에 독립서점까지 겸하는 곳이 된 모양이었다. 아직도 그들은 한 방향으로 잘 나아가는 것 같다. 마침 나는 북카페를 좋아하니까 다음번에 대전에 가게 된다면 오랜만에 꼭 다시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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