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4월 1일일 뿐인데

BGM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해줘>, 오지은

by 세니seny

(2014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2014년 4월 1일. 3월 31일에서 단 하루가 지나 4월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눈에 띄게 따뜻해진 날씨는 더더욱 상승곡선을 타고 마침내 4월 1일인데도 서울에 벚꽃이 만개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럴수럴수 이럴수! 고작 4월 1일이 되었을 뿐인데 왜 이리 마음은 심란하고 싱숭생숭한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따지고 싶어졌다.


시작은 이러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일찍 찾아온 벚꽃. 원래는 다음 주 주말에 친구들과 경주 여행을 가서 벚꽃이 잔뜩 핀 보문호 구경도 하고 곁다리로 역사탐방도 좀 하고 오려고 했는데 그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미리 기차표와 숙소를 예매했기 때문에 취소하기도 어려워서 여행은 그냥 가게 됐지만 그 대신 벚꽃이 예쁘게 핀 보문호는 (아마) 보기 어렵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주말은 당장 이번 주뿐이니까, 그럼 이번 주에 벚꽃을 보러 가야 했는데 항상 벚꽃놀이를 함께 하던 나의 베스트프렌트 그녀는 한 달 사이에 남자친구가 생겨버렸다. 짝사랑이었는데 먼저 고백해서 사랑을 쟁취해 낸 그녀는 멋있었다.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그녀의 인생이고 마땅히 응원해 줘야겠지만 어쨌든 나는 벚꽃놀이 갈 사람을 잃고 말았다. 원래 여행 멤버들과 서울에서 볼까도 했지만 다들 결혼식이다 약속이다 뭐다 해서 그것도 캔슬. 그러고 보니 진짜로 벚꽃 보러 같이 갈 사람이 없다.


20대 초중반엔 그래도 찾아보면 벚꽃놀이에 같이 갈 동성친구 한, 둘쯤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원래도 좁디좁았던 인간관계는 더더욱 좁아져 갔고, 그게 지금 이런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이런 기분을 점점 더 자주 느끼게 되지 않을까.


나는 대체적으로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지만 이런 나 역시도 타인과의 공명을 원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아무리 혼자 잘 돌아다닌다고 해도 도저히 혼자서 가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그래서 서글퍼졌다. 앞으로도 내가 이딴 식으로 살아간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이런 것들, 이런 감정들이겠지. 그래서 이런 감정들을 견디고 나아가야 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다행이다. 집에 와서 엄마랑 잠깐 얘기하는데 수영하는 30대 젊은(우리 엄마가 보기엔) 아줌마들이 드라마 '밀회' 이야기를 하며 유아인이 멋있다는 둥 연하남이 어쨌다는 둥 남편이랑 십몇년을 살다 보니 꼴도 보기 싫다는 둥 다른 반의 젊은 수영 선생님이 참 귀엽고 좋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해댄단다. 낮에 잠깐 놀러 온 이모도 요즘 낮에 사교댄스를 배우는데 거기 선생님이 그렇게 잘 생겼다며 어쩌고 저쩌고... 비단 나의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봄을 맞아 많은 여자들이 다 그러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도 여자구나,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봄은 무섭다. 봄을 그렇게 기다려왔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건 바로 이런 감정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똑같이 외롭더라도 겨울에는 그래도 다들 추위에 온몸을 꽁꽁 싸매는 것처럼 감정도 싸매졌는지 그런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아주 조금 날씨가 풀렸을 뿐인데, 사람을 홀릴 정도로 날씨가 아주 좋게 풀렸기 때문인지 몰라도 겨울 내내 케케묵고 꽁꽁 싸맸던 감정들이 똬리를 풀고 나와 서서히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달 전에 그냥 내가 좋다고 오케이만 하면 사귀는 사이가 됐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깨버린 소개팅이 생각이 났다. 심지어는 몇 년 전 부천영화제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헌팅당했던 일까지 떠오르며 '그래, 그냥 그 남자애한테 연락처나 줄 걸, 이상한 사람이면 연락 끊으면 그만이고. 어차피 나처럼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영화제까지 왔을 테니 의외로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라는 과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안될 거 같은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오지은의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해줘'를 들으며 정확히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이유, 사랑받기 어려운 이유를. '당신이 나에게 웃어주지 않으면 / 나도 당신에게 웃음을 보일 수는 없어'라는 가사. 나의 마음을 딱 알맞게 표현한 가사.


나는 이렇게나 이기적인 인간이다. 아니면 속으로 곪고 있는 인간일 뿐이다. 혹시 내가 무작정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 문장은 반대로 바뀌겠지. '당신이 나에게 웃어주지 않아도 / 나는 당신에게 웃음을 보여줄 거야'.


하지만 그런 감정을 지녀본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결국 지금의 나는 전자의 가사를 모토로 삼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연애도 결국 인간관계의 연장이니까 맞는 말이다. 나는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그래도 그나마 변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며 다시 마음을 닫고 있다. 어렵다.


올해는 연애든 뭐든 일단 사람도 많이 만나보고 그래야겠다. 내가 내 벽을 깨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으니까.







당신은 아직 사랑에 빠질 수는 없다고

나도 아직 사랑에 빠져 줄 수는 없겠지만


푸른 밤이 내리면

당신은 나에게 전화를 하구요

나도 당신의 그 괜한 연락을 기다려

왜일까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아

당신은 혹시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나요


한 번 생각해 봐

당신이 나에게 웃어주지 않으면

나도 당신에게 웃음을 보일 수는 없어


사랑한다는 거짓말로

나의 눈을 멀게 해 봐요

한 줌 조차 되지 못 할 당신과 나라면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해줘>, 오지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요일, 일주일의 마지막이자 시작인 날